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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May 22. 2022

왜 기생하려 하는가? 독립적인
숙주가 되자.

<# 엄마의 가성비 좋은 셀프 치유 놀이>

‖외로운 여우가 독립적인 두루미와 결혼하게 되면‖    


   알파 메일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Alpha는 ‘어떤 것의 가장 첫 번째’를 가리키는 말로 male이라는 단어와 합성이 되어 동물 집단에서 가장 힘이 세고 영향력 있는 리더를 일컫는다. 이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알파형 인간’이란 옥스퍼드 영어사전의 정의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직업적 환경에서 지배적 역할을 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 혹은 리더의 자질과 그에 대한 자신감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Alpha-female이라고 생각하는가?


   라이프 코치 전문가인 손현정 박사가 운영하는 「손현정 TV」라는 유튜브에 올라온 체크리스트를 통해 나는 alpha-female로 판명되었다. 예전에 이 유튜브에서 <일 잘하는 여자가 남자 복이 없는 생물학적인 이유>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무리에는 두 마리의 알파 메일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능력이 있는 여자는 사회적으로 더 인정받고 발전하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능력이 뛰어난 남자를 밀어낸다는 것이다. 그때 상당히 일리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와 함께 승진이나 자기 발전보다 가정에 더 충실해 주길 바라는 남편으로 인해 항상 뭔가 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운 마음의 근본 원인을 찾은 것 같았다.  

출처 : 픽사 베이

      알랭 드 보통은 《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에서 결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결혼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이다."     

 

   나로서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결혼에 대한 정의다. 내가 누구인지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은 채 별다른 계획도 없이 고통의 바다로 흔한 고무 튜브도 없이 몸을 던졌으니까. 눈에 아주 두툼하고 절대 벗겨질 것 같지 않은 콩깍지까지 끼고서 말이다. 아무리 반대 성향에 끌린다지만 감정형인 나는 이성형인 그의 흔들림 없는 시몬스 침대와 같은 안정적임에 마음이 빼앗겼다.

출처 : 픽사베이

   당시에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경기도에서 자리를 잡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다. 게다가 소개받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럿이 있는 모임에서 서로 알아가다가 사랑이 싹트는 스타일인 나는 연애나 결혼을 전제로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의 일대일 만남이 체질에 맞지 않았다. 시간 낭비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연수 중에 믿음직스러운 느낌의 남편을 자연스럽게 만났다. 1년도 채 안 되는 연애기간이었지만 그 흔한 체크리스트나 혼전 계약서도 없었다. 하물며 결혼 후의 역할 분담이며 갈등 조정에 대한 어떤 대화도 없었다. 마냥 좋다가 호기 넘치게 결혼이라는 낭떠러지로 천진난만한 미소까지 지으며 다이빙을 한 것이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빠지는 행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강렬한 열중,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그렇다. 그가 내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분리불안을 말끔히 해결해 줄 구세주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오랜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어줄 유일한 천사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착각과 오만으로 인해 참 오랫동안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정말 헛똑똑이었다. 그는 언제나 “나는 팩트만 말하잖아.”라며 숫자를 들이댔고 나는 “내 마음 좀 알아달라고.”라며 감정에 호소했다. 그의 눈에 비친 나는 멍청한 똘아이였다. 내가 야무지지 못한 면도 있었겠지만 매사에 그는 선생이고 나는 부진아 학생이었다. 나는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잘한다 잘한다 응원해줘야 내가 가진 모든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응원은커녕 맨 날 야단만 맞고 있고 틀렸다는 소리만 들으니 나는 생기를 잃어갔고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깊은 슬픔과 외로움에 빠져 무기력해져 버렸다.    

   결혼생활이 뭔지 제대로 모르는 것 이전에 사랑이 뭔지 몰랐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나의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 즉 ‘그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라는 어린아이의 성숙하지 못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나 또한 사랑의 문제를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만 생각했었다. 그에게 침투하여 그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려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 것은 사랑하면 저절로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행동하고 사랑을 갈구했다. 여우가 두루미에게 접시에 음식을 애써서 차려주고는 이제 공정성의 원리에 의해 사랑을 달라는 식이었다. 우리는 너무도 다른 서식지에 사는 동물이었다. 나는 그의 이성에 끊임없이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그는 나의 감정에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다. 나는 그 사람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세계를 어둡게 보고 나 자신도 혐오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의존성으로 인해 내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사랑의 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출처 : 픽사 베이

  우리는 결혼 10년 차가 되어서야 거의 1년간 서로 죽일 듯이 다투고 서로를 미워하며 막장까지 가려고 했다. 이혼 직전에 근 두달간 별거를 통한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운 남편과의 감정 싸움과 지긋지긋한 집안일에서 벗어나자 일주일은 너무도 편했다. 다시 처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모든 시간이 나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몸에 각인된 엄마이자 아내로 살아왔던 십 년의 세월은 나를 자꾸 ‘우리 집’으로 향하게 했다. 우렁 각시처럼 몰래 들어가 집안일을 조금씩 하고 돌아왔다. 반찬이나 국은 해놓아 봤자 그 자존심에 버릴 게 뻔하니 설거지와 청소만 해놓고 나왔다. 아이 곁에서 자고 싶은 날에는 밤에 몰래 아이 옆에서 자다가 새벽에 나왔다. 그렇게 바닥을 치고 좌절감과 외로움을 처절히 맛보고 나니 그리고 집안일에서 좀 벗어나서 쉬고 나니 그제야 가족의 소중함, 그 울타리가 주는 안정감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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