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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Mar 14. 2021

힘빼자! 참을 수 없이 가벼울 때까지


‖ 힘을 빼자. 참을 수 없이 가벼울 때까지 ‖    


  나는 끄떡하면 운다. 그놈의 감수성 폭발하는 눈물샘은 당최 마를 생각이 없다. 방학식 다음날 설거지를 하던 도중 청승맞게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간 잘 참아온 내가 너무 대견해서. 크게 얼굴 붉힐 일을 만들지 않아서. 누구와도 다투지 않고 관계가 어긋나지 않게 해서. 힘든 코로나 상황에서 순항은 아니었지만 함께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해 웃으면서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게 돼서. 그 모든 여정이 감격스러웠던 것 같다.    

       

  ‘내공은 그냥 우리 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만 쓸 걸. 뭣 하러 부장은 해가지고 이렇게 과거의 나를 소환해야 할까?’ 이런 후회가 들 때가 있었다. 힘겹게 버린 ‘완벽주의’라는 옷을 다시 찾아 입고 나를 옭아매기. 내려놓은 ‘인정 욕구’을 다시 잡아 저글링 하며 나를 괴롭히기. 자존감은 돌려 깎아 말리고 쪼그라든 공간에 ‘자존심’을 끼워 넣기. 나름 튼튼하게 리모델링해왔다고 생각한 내 마음의 집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나는 다시 건강하지 못한 나로 돌아가려고 했을까? 이왕 하는 거 ‘잘하고’ 싶었다. 못한다는 말은 절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잘한다는 기준은 얼마나 애매한가. 그 답을 몰라 무작정 열심히 했다. 맞다. 두려움이 파고든 것이다. 아직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은 잘못된 믿음 때문에.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부끄럽다. 그런 나의 실체를 알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방어해야 한다.’ 도대체 질긴 생명력을 지닌 ‘자기 불신’이라는 괴물을 어떻게 처단해야 할까?      

     

  영국 최고의 심리치료사인 마리사 피어는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에서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내놓았다.          

 

   “우리는 모두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이는 곧 인간의 행동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당신의 내면에 있는 프로그램을 다시 설정하면 부적절한 역할 모델과 잘못된 조언 및 믿음으로 형성된 사고방식을 없앨 수 있다. 그것이 사라지면 태어날 때부터 본래 갖고 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다.”      

    

 아, 딜리트 키라도 있으면 싹 초기화시키고 새로 프로그램을 깔면 좋으련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사고방식을 한 순간에 지운다는 게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니다. 자존감이 심하게 쪼그라든 어느 날 나는 교감선생님과 대화 중에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보다 더 완벽주의 성향의 동료로 인해 제 부족한 능력이 들춰지면 괜히 속상해요. 앞에 나서서 일을 하지 않았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조용히 우리 반 아이들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됐을 텐데......”

  “그냥 그 사람이 잘하는 걸 잘하게 둬. 그 사람이 빛나게 해줘 버려. 그럼 편해.”

  “아......”

  “그리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네. 선생님이 했던 그 좋은 교육과정 프로그램의 혜택을 예전에는 선생님반 아이들만 받았을 거잖아. 그런데 지금은 1학년 전체 학생들이 받으니 얼마나 좋아. 그게 더 멋진 거 아니야?”


            

  참 신기하게도 그가 툭 던진 한 마디에 꽉 쥐고 있던 주먹의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더 존재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타인에게 넘긴다고 해서 초라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있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빛나는 존재인걸. 그날 이후 나는 실수를 좀 더 편안하게 드러냈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디테일에 탁월한 동료가 맘껏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고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동료들의 예리한 코멘트로 나의 아이디어가 실용화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는 협업의 힘을 새삼 깨달았고 겸손을 배웠다.  

         



  프로그램화된 강박적 행동을 깨는 데는 로버트 그린이 쓴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그는 성격은 바꿀 수 없지만 패턴은 바꿀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당신의 발목을 계속 붙잡는 실수나 패턴을 가혹할 만큼 정직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 …… 그리고 사춘기를 지나서까지 이어지고 있는 당신 성격의 타고난 강점도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됐다면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성격의 포로가 아니다. 이제 똑같은 전략과 실수를 끝없이 반복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평소 패턴에 빠져 드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제때에 알아차리고 한발 물러 설 수 있다.”     

     

  ‘가혹할 만큼’이라는 표현에서 정신이 번쩍 들지 않는가. 내가 평생 사용해야 할 프로그램에 결함이 있으니 이를 고치기 위해 냉철하고도 신랄한 분석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로 인해 나는 나의 한계와 강점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낡은 패턴에 끌려 다니며 나 자신을 괴롭히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가장 큰 수확이다. 타인의 말이나 무관심을 모욕이나 공격으로 해석하려 할 때 얼른 패턴을 알아차리고 신경을 다른 곳으로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작은 변화가 가능했을까. 아마도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과 나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자기사랑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패턴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연습을 계속한다면 그 영향력만큼은 완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능력이 안 되거나 성향이 맞지 않는 일은 손대지 않게 되는 지혜도 얻을 수 있단다. 나는 나의 패턴과 나 자신을 알아가면서 어떤 포인트에서 내가 움찔하는지 알기에 그 순간 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는 몸에 힘을 빼고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나의 자리를 찾아갔다. 부장 경험이 많은 친구가 매번 내게 해 준 말이 있다. “부장이 별거야? 줄반장 같은 거야. 그냥 힘 빼!”        

   

  처음에는 몰랐다. 도대체 힘을 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제는 알겠다. 힘을 뺀다는 것은 부족한 나를 감추는데 억지힘을 쓰지 않는 것임을.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않는 것임을. 취약한 분야에 온 힘을 쓰지 않는 것임을. 까짓것 모르면 물어보고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릴 줄도 아는 것임을. 나에게 거는 기대를 낮추고 ‘이만하면 됐어!’라며 손 털기를 할 수 있음을. 그냥 자연스러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임을.      

      

  구스노키 교수는 「일을 잘한다는 것」에서 일을 잘한다는 의미를 업무 기술을 넘어서는 개념으로 ‘감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힘 조절을 할 줄 아는 감각을 일을 잘하는 능력으로 간주한다.      

  

  “정말 감각이 있는 사람은 그저 감각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감각을 발휘할 자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직감이 실로 뛰어나죠. …… 물러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아는 것, 이 또한 일을 잘하는 사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이든 일이든 대부분의 센스는 덜어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듯 아는 만큼 힘 빼기도 가능하다. 모르면 두렵고 방어태세로 돌입하여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배우고 익힌다. 특히 젊은 후배들에게서는 최신 기술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열정적인 선배들에게서는 노련미를 갖춘 업무 기술과 세련된 관계의 기술을 배우며 나를 업그레이드 중이다.           



  

  중년임에도 여전히 쉽지만은 않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 특히 작은 리더로서의 역할에 대한 노하우는 그때그때 유튜브를 들으며 수혈을 받는다. 유튜브 채널 《유세미의 직장 수업》의 유세미 작가는 직장 여성으로서 최고의 멘토이다. 현재 내가 딱 필요로 하는 조언과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어서 15분 이내에 고민이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 든다. 최근에는 어도비 코리아 우미영 대표의 《어른친구》 채널에서도 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생생한 꿀팁을 들으며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새로운 나로 덮어씌우기를 해나가고 있다.  

         

  이렇게 작은 리더를 체험하는 일은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모두 실험해보는 계기가 된다. 나를 더 알게 되고 내가 모르던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무엇보다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경험은 한 단계 나를 성장시킨다. ‘하찮음’, ‘귀찮음’, ‘시원찮음’을 넘어서고 나니 아주 쬐금 ‘내려놓음’에 다다랐다. 예전보다는 자존감이 안정적이 되었고 나 자신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고된 봉사직이지만 올해 다시 부장에 도전했다. 나의 고민과 불안에 항상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시는 교감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글로 내게 힘을 주셨다.     

      

  “샘을 보면 한여름 밤 깨끗한 냇가에 있는 반딧불이가 생각납니다. 보기에는 여려 보이나 어두운 밤 충분히 주변을 밝히는 반딧불이 같은 분입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제일 좋은 건 교육에 관해서 제 생각을 샘 같은 분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겁니다. 학년부장은 학교의 꽃입니다. 올 한 해 화려하게 꽃 피시길 바래요.”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한 꽃이고 싶다. 꽃이기보다는 차라리 신형건 시인의 동시 <가랑잎의 몸무게> 속 가랑잎이고 싶다. 한없이 가볍지만 풀벌레와 풀씨를 덮어주는 ‘따스함’을 지닌. 제 몸을 갉아먹던 벌레까지도 포근히 감싸주는 ‘너그러움’을 지닌. 1년간의 작은 리더로서의 삶을 복기해보니 다시 한번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보인다. 여전히 나는 허점투성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배움과 성장의 끈을 놓지 않고 가다 보면 언젠가 ‘그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작지만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얕지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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