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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Feb 06. 2021

까짓것 애매한 리더십이면 어떤가

 

 애매한 리더십이면 어떤가.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 


부장이 되고 나서 예민한 성향의 나는 종종 머리가 아팠다. 몸은 그대로인데 눈과 몸 안에 장착된 센서는 고성능으로 교체된 느낌. 카멜레온이 된 거 같았다. 의도적으로 봐야 할 데이터와 의도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데이터가 폭주했다. 초록을 잘 유지하던 감정 신호등이 빨강으로 바뀌면 내 몸은 비상상태로 돌입. 발끝에 있는 피까지 끌어 모아 머리로 보냈다. 또다시 지끈지끈. 그래도 조금씩 무뎌졌다. 고맙게도 눈치 빠른 몸이 알아서 진화하며 감정의 교통정리를 잘해주었다. 그런데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불협화음이 생기자 내 리더십에도 적색 신호가 켜졌다.  

   

학부모와 소통의 창구인 플랫폼 선정에서부터 줌을 활용한 수업의 도입 여부까지 불확실한 상황을 두고 불편한 대화들이 오갔다.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고려할 사항이 많으니 혼란스러웠다. 내 몸은 ‘첫 경험’을 앞둔 모두의 불안을 흡수해 탄력을 잃고 흐물흐물한 스펀지가 된 거 같았다. “부장님, 왜 이랬다 저랬다 해요?” 이 말이 훅 몸을 뚫고 들어왔다. 그때는 서운했지만 리더십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반성했다. 철저한 분석이 빠진 유연함은 변덕스러움으로 비칠 수 있음을. 



     

제프리 헐의 「FLEX에는 팀장으로서 자신의 리더십 유형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리더십 에너지 자가평가’ 체크리스트가 있다. 이 테스트를 통해 에너지를 어디에 집중하고, 평소에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각각 30개의 문항에 체크를 했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결과는 ‘감성형 리더십’이 93프로로 압도적이었다. 2위는 67프로가 나온 이성형, 행동형은 33프로가 나왔다. 막힌 것이 뻥! 뚫리는 기분. 초반에 왜 우리가 힘들어했는지 알았다. 


문제에 대한 자료와 정보 수집, 수집한 자료의 철저한 분석, 새로운 기기와 기술을 먼저 체험해보고 장단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설상가상으로 위기 관리 능력의 부재. 블랙 스완 상황(발생 가능성이 극히 적지만 한 번 발생하면 치명적인 사건 혹은 현상) 앞에서 나는 우리 팀의 리더로서 플랜 B뿐만 아니라 C, D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플랜 A에도 확신이 없었으니. 맞다. 딱 그 순간에는 ‘이성형 리더십’이 답이었다.   

  

이참에 예전에 읽었던 케이트 루드먼의 「알파 신드롬」에서 내 유형의 치명적인 위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처방전도 다시 꺼내어 읽었다. 이 책에 따르면 나는 ‘알파형 몽상가’에 가깝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감성형 리더십’과 닮았다. 이 유형은 강력한 열정, 뛰어난 직관력, 호기심을 바탕으로 높은 목표를 세우고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미래지향적인 인간이다. 다만 이 강점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다음과 같은 처방전을 잘 따라야 한다.

      

 실무적 재능이 있는 사람을 곁에 두기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기다리기반대 의견에서 배울 점 찾기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은 위임하기시간과 자원의 한계 인정하기신중하게 검토하고 정직하게 단점을 드러내며 주변으로부터 피드백을 요청하기   

  

역시 리더십 코칭은 리더십 전문가에게 받는 게 맞다. 이쯤에서 내 실수를 발견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실무적 재능이 있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다는 점.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을 위임하지 않은 점.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고 용쓰다가 더 우스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감성형 리더십에도 함정은 있다. 공감능력이 너무 높아 경계선의 구분이 모호한 점. 과도하게 감정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 나는 공과사의 구분선, 대화에서 참고 넘어갈 선이 흐릿했다. 동료들의 말투와 표정에서 나오는 감정에 세세히 신경 쓰느라 사실에만 집중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어진 긴 회의. 과도한 공감이 부른 역효과다. 사실 나는 혼자서 다량의 공감에 취해 비틀거린 거나 다름없다.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내 강점을 활용해 동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더 신속히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을까.     



팀원의 공감도를 숫자로 산출하는 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조직 혁신 컨설턴트인 아사나 고지「THE TEAM」에서 다음과 같이 구성원의 공감도를 높이는 방정식을 제시한다.


  공감도 보상 목표의 매력(하고 싶다) × 달성 가능성(할 수 있다) × 위기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줌 수업의 도입에 관한 토의를 적용해 이 공식을 이해해보자. 이미 시작한 학년이 있고 화상 수업이 대세가 된 상황이니 ‘위기감’은 디폴트 값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하고 싶고 할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 이는 마음을 가볍게 해서 행동하게 해야 하는 문제다. ‘내 얼굴과 수업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돌아다니면 어쩌지?’, ‘기기 활용을 잘 못해서 혼자 뒤처지면 어쩌지?’ 같은 두려움과 불안을 덜어내는 게 우선이다. 최악의 상황을 유쾌하게 유머로 풀어내면서. 그다음 단계로 줌 수업의 매력과 가능성을 어필해야 한다. 제품을 홍보하듯이. 「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에서 최명화 블로썸미 대표는 요즘 세대에게 제품을 팔려면 “소비자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먼저 멋진 사람이 되어 그들을 유혹해야 한다.” 라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당신이 미처 몰랐던 것을 알려줄 테니 들어봐가 아니라 내가 이런 사람인데관심이 가니?”라는 톤으로 속삭여야 한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막막할 땐 무작정 겸허한 자세로 시도해봐야 한다. 여러 동영상을 비교해본 뒤 왕초보도 따라 하기 쉬운 줌 수업 사용법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는 속삭이는 거다. “나는 기계치인데, 따라 해 보니까 할 만하네. 하나씩 배워가자. 모르는 것은 서로 도와가면서 하자. 어때? 관심이 가?” 이제는 안다. 공감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행동형 리더십’도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이 없는 설득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지난 1년을 복기해보니 그래도 후반에는 리더십 책들에 나온 전략들을 어설프게나마 활용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전날 ‘이성형 리더십’을 가진 동료가 통화 중에 한 말을 듣다가 울컥했다. “부장님, 처음에는 어디서 본 적 없는 부장 스타일이고 다소 흔들리는 모습이었는데 2학기부터는 자신감 있고 강단 있게 끊을 때는 딱 끊으면서 일을 추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부장님은 올해 본인의 성장 점수를 높게 줘도 될 것 같아요. 내년에는 진짜 더 잘하실 거예요.”   

   

이 동료의 피드백이 더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초반에 “부장님, 왜 이랬다 저랬다 해요?”라고 말했던 바로 그 친구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나의 리더십 처방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1년 동안 나는 그녀의 실무적 재능과 반대 의견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몸에 좋은 것이 입에는 쓰다’는 말이 사람에도 통하지 않을까. 참 고마운 그녀는 내 리더십 면역력을 키워준 보약이었다. 덕분에 콩알만 한 리더십 근육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아직 나의 리더십의 정체성을 모른다. 성장을 지향하고 협력하고 나누고 교류하는 것을 좋아하니 베타형이기도 하고, 반면에 성취욕도 높은 알파형 이기도 하나 다 부족하고 애매하다. 「일에 관한 아홉 가지 거짓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가 아는 모든 리더에게는 명백한 결점이 있다. 리더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며 완벽과 거리가 멀다. 높은 성과는 특이함에서 나오고 성과 수준이 높을수록 특이함 수준도 높아진다. … 설령 어떤 마법 같은 리더십 자질 세트가 있더라도 그것 없이도 많은 리더가 다양하게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완벽한 리더십 치트키 없이도 나만의 리더십을 만들 수 있단다. 좀 위안이 되지 않은가. 무엇보다 독특함에서 높은 성과가 나온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요즘 나는 <싱어게인>에 나오는 30호 가수에게서 나의 셀프리더십의 방향을 엿본다. 뛰어난 사람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재능인 사람. 기존의 곡을 자기 멋대로 해체하고 조립하여 본인만의 스타일로 재창조하는 사람. 자신이 선보인 음악 장르를 ‘30호’라고 말하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사람.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어디서나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충분히 예술적이지도 않고 충분히 대중적이지도 않고 …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오히려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15년을 질투와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도전하며 워킹맘의 생활을 버텼더니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충분히 지적이지도 충분히 감각적이지도 충분히 역동적이지도 않은. 어느 자리에서든 크림처럼 생각이 유연하고, 사랑을  나르는 ‘슈퍼달팽이가 돼볼까? 1학년 선생님 아니랄까 봐 살짝 유치하다. 앗!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이미 있는 표현이다. 프랑스 슈퍼달팽이크림. 이건 아니다. 이번엔 살짝 세련되게 수정. 상황에 맞게 필요한 리더십으로 모드를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지. 꿈이 너무 야무진가? 아무튼 그동안 내 안에 작고 못생긴 형형색색의 구슬들이 모였다. 그것들을 내 멋대로 쪼개고 연결하다 보면 언젠가 뭐라도 되지 않을까. “리더십 장르가 뭐죠?”라고 물으면 “생강차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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