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강차 Jun 26. 2022

받아들임 3.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선택했음을 인정하자.

<#엄마의 가성비 좋은 셀프 치유 놀이>

받아들임 3. 히스테리성 성격장애로서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선택했음을 인정하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에서는 어딜 가든 내가 주인공이 되고 싶고, 그 자리에서 조금씩 밀려난다는 느낌을 받으면 불편하며,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라고 여기면서 자책하는 주인공 이야기가 나온다. 깜짝 놀랐다. 딱 내 얘기라서.  

    

이 책에 나온 정신과 의사는 이를 히스테리성 성격장애의 성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나 스스로도 극단적인 걸 알고 있었다. 단순히 모 아니면 도!, 호불호가 분명한 편으로만 생각해오던 내가 사실은 중간 세계가 없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고수해 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떤 자리에 가더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 전혀 기를 펴지 못하고 차라리 찌그러짐을 택했다. ‘모두 내가 싫은가 봐’라고 밑도 끝도 없는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서. 다른 사람이 내 친구나 동료에게만 외모든 어떤 능력에 대해 칭찬을 하면 그 자리에서 나는 아예 투명인간이나 잉여인간 취급을 당한 것 같은 느낌을 혼자 받았다. 그리고는 질투와 시기심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으르렁대서 갑자기 화가 나거나 우울해졌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남의 시선이나 심리를 과다하게 느껴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이나 패턴을 보이는 경우를 ‘자의식 과잉’이라고 부른다. 내가 딱 그 상태였다. 나도 이런 내가 불편했다. 정신병자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정도였으니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미르네의 일상으로의 초대'-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중 명대사>

유대교의 교리 중에 열 명의 사람이 있으면 그중 한 사람은 반드시 나를 싫어하고, 두 사람은 나와 좋은 벗이 될 정도로 나를 좋아하고 나머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즉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 철학자가 나를 싫어하는 한 사람만을 보는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예화이다.      


나는 이러한 관계의 법칙도 모른 채 항상 나에게 관심이 없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혼자 상처를 받았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고 친한 척도 했다. 그런 일들은 나 자신이 비굴하고 때로는 역겹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가장 마음이 아픈 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신경을 덜 쓰다 보니 그들을 서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년 전에 직장 후배가 했던 말이 뇌리에 박혀 그때의 내가 부끄럽기도, 지금의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짓게 하기도 한다. “언니, 우리 몇 명이 언니를 좋아하는 것으로는 부족해?”     

마음공부를 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나를 있는 그대로 조금씩 받아들였다는 점도 있지만 나를 좋아하고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졌다는 거다. 가족보다도 더 나의 밑바닥을 알고 있음에도 10년, 20년 이상 친구로 내 곁에서 존재해 줌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타인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둬들여 나를 돌보는 데 쓰고 내 사람들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다 보니 거기에서 느껴지는 충만함이 컸다. 그 따뜻한 만족감은 질투나 시기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마저도 서서히 잠재웠다.

      

어느 순간 부러움이 시기심으로 퇴색되지 않았다. ‘담담한 부러움’이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갖지 못한 걸 너만 가졌구나. 난 피해자야.’가 아닌 ‘내가 갖지 못한 걸 넌 가졌구나. 부럽다.’로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나는 갖지 못했지만 ‘괜찮아’ 식의 체념이나 자기 위로도 아니다. ‘나는 그것은 갖지 못했지만 대신 이것은 가졌잖아?’식의 자기 합리화도 아니었다. 그저 네 인생, 내 인생, That's it!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완벽한 결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