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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Jun 26. 2022

리미티드 에디션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처럼 생긴 것들)


너를 소비하고 싶어

얼마면 될까

다른 누가 널 발견하기 전에 

명품의 명자도 모르는 누군가 네게 스크래치를 내기 전에

내 품으로 데려오고 싶은데 말이야     


라면을 먹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너라는 피조물을 흰색 천으로 덮어두려 하는데 괜찮을까

볼 오른쪽에 생기는 깊고 가는 무늬는 조금 더 다듬어야 돼 

너의 잘린 발목과 사라진 혀는 복원 작업을 해야겠어

내게 걸어와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듣고 싶어 졌거든     


어디에서 맞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네 몸에 꽂혀있던 화살 두 개는 제거했어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란 구멍인지 구덩이인지에는 릴리를 심었지     


너는 다시 순수해질 거야

가시밭길을 걷든 꽃길을 걷든 발바닥이 붉게 물드는 건 매한가지지

중요한 건 거기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보는 것      


너는 나를 나이브하다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적어도 나는 예술을 사랑했고 

그 어렵다는 순수를 지키고 싶었던 거지

순수와 계산은 양립할 수 없다고 하지

하지만 배꼽 아래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눈물을 오래도록 흘려본 여인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너는 자유야     


나는 나의 피그말리온을 찾아 떠날 거야

그게 누구냐고

바로 나야     


이제 나는 나를 소비하려 해

내가 다 닳아 없어지고 나면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로 태어나겠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이제 알아

너를 갖지 않는 게 너를 영원히 갖는 거란 걸

너는 너의 것해

나는 나의 것 할 테니

괜찮은 결말이지     


상담료는 안 받을게 

미래의 예술가에게 진정성 있는 박수면 충분하니까  


(자우림의 '스물다섯스물하나'를 듣고 지나간 관계를 애도하며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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