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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Jun 19. 2022

완벽한 결혼식

(#일상에서 건져 올린 시처럼 생긴 것들)

 

우리 결혼하자

     

죽은 제3의 눈들이

찬연한 척 매달려 있은 샹들리에 없이

곧 핏빛으로 물들 걸 모른 채

순수한 척 서있는 순백의 꽃들 없이

영혼 없이 무한 반복하는 사랑의 인사 없이

개성 없이 가짓수로 승부를 보려는 음식들 없이

억지웃음을 짓는 구경꾼들에 둘러싸인 원숭이 하지 말고

가짜 보석이 박힌 위선의 갑옷은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둘만의 서약을 하자     


그래 우리 결혼하자     


언젠가 던져 올린 너와 나에게 깊숙이 박혀 있던

마지막 칼날

그 가장 서늘하고 가느다란 초승달 조명 아래서

치열하게 밀고 나가 끝끝내 거대한 흰 꽃을 피워낸 파도 옆에서

흩날린 차가운 꽃잎은 웨딩드레스로 입자

진보와 죽음과 부활의 “밤의 파도 소리” 3악장은

질릴 때까지 듣고 또 듣자

음식은 보이는 것 딱 한 가지로 요리해서

서로를 대접하자   

  

이제 우리 진짜 결혼하자

     

활활 타오르던 화염은 드디어 가짜를 태웠다

손발이 묶인 채 질질 끌려가던 어린 너와 나는

이제 스스로 일어섰다

그러니 재를 밟고 행진하자

눈부시게 당당하고 아름다운 서로를 보며 자축하자

그 누구의 인정도 필요 없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다시 태어난 너와 나 그걸로 충분하다

같이 살자 밤의 파도 소리가 그칠 때까지 사랑을 나누자 왜냐하면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있었다면 내가 아내이고 당신이 남편일 테니까  


(지인의 결혼식에 다녀와서 신랑, 신부의 내면아이를 생각하며 쓴 글)

*영화 jude의 마지막 대사 중 아내와 남편의 순서만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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