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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4. 2022

엄마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자

-부모가 아니라 발직한 집사가 되자 중에서-

 당신은 당신과 자녀와의 관계를 무엇과 무엇에 비유할 수 있는가? 나는 아주 오랫동안 나와 아이의 관계를 ‘나와 어린 나’로 보았다.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나의 결점을 완벽히 보완해서 업그레이드 버전의 나로 성장시킬 ‘미래의 나’로 보았다. 그러한 잘못된 생각으로 아이와 나 사이에 약간의 거리도 허용하지 않았고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유착되어 아이를 내 멋대로 조종하려 들었다. 사실 그때는 내가 아이를 조종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육아에서 보이는 나의 대부분의 강압적인 태도를 헌신이나 사랑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나 자신을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아이에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간섭을 하고 사사건건 통제했다. 엄마의 말이 곧 진리이자 법이라는 듯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아이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아이가 클수록 나와 아이의 관계는 견주와 목에 단단한 목줄을 채운 애완견의 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운 서정주의 <문둥이> 속의 문둥이처럼 내 새끼를 잡아먹는 문둥이였다. 직장에서 또는 남편에게서 받은 스트레스와 원래 내가 가지고 있던 신경증 모두가 응축되어 나를 짓누르는 피곤한 저녁이 되면 나는 아이를 가르치는 괴물로 변신하여 거의 매일같이 아이를 잡았다. 딸아이는 결코 원하지 않았을 엄마 선생님. 직장에서 에너지를 다 쓰고 와서 저녁까지 해서 먹고 정리하고 나면 진액이 다 빠져나간 사골 뼈 상태가 되었지만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야간 학습 지도를 한 것이다. 고3도 아니고 겨우 여섯, 일곱 살이던 아이에게.      

<출처 : 픽사베이>


  그 어린아이의 오장육부를 다 파먹고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근원도 모르는 화를 기어이 아이에게 다 쏟아내고 나서야 그날 엄마의 의무는 끝이 났다. 좀 심했던 밤이면 죄책감에 시달리며 내 방으로 돌아와 참 많이 울었다. 아직 젖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은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도대체 나는 무슨 권리로 아이의 행복권을 밤마다 박탈하고 있는지.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가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화를 참지 못했어. 다시는 안 그럴게. 진짜 미안해.” 이런 식의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에는 “네가 잘못될까 봐 걱정돼서 그랬어. 다시는 화 안 낼게. 미안해.”라는 변명을 둘러대며 사과를 했다. 웨인다이어의 『행복한 이기주의자』를 보면 이러한 태도를 하나의 노이로제 반응으로 설명하는 글이 있다. “우리들이 오랜 세월 동안 걱정과 자책감을 일으키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로 자책감을 느끼지 않으면 어쩐지 ‘나쁜’ 것 같고 걱정하지 않으면 어쩐지 ‘매정’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이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얻기 위한 노이로제 반응이다.”     



  엄마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쓰자     

  그렇다. 나는 아이에게 행한 잘못된 행동에 자책감을 느끼고 아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기인한 행동이었다는 변명을 하며 속으로는 ‘따뜻한 엄마’, ‘좋은 엄마’라고 위안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뒷수습을 하는 식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다. 아이는 서서히 나의 사과에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사과하면 뭐해요? 다음에도 또 그럴 거잖아요.” 아이는 울면서 희망이 없다는 듯 말했다. 감사하게도 아이는 끊임없이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는 사인을 내게 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빠의 위협적인 태도들이 무서워 조용히 입을 다물고 나만의 세계로 숨어버렸다. 그것이 오히려 후에 나 자신과 내 가족에게 어마어마한 시한폭탄이 되리란 걸 그때는 몰랐었지만.   

   

  똑똑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육아서들을 몽땅 버리고 육아 심리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안에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조금씩 내 언행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폭발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특히 사과하는 내용이 달라졌다. “엄마 안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어. 어린 시절에 제대로 사과받지 못해서 아직도 화를 내고 있고 울고 있는 아이가 있어. 그래서 엄마가 그 아이를 모른 체하고 잘 달래주지 않으면 이렇게 화를 내고 마는 거야. 만약에 엄마가 화를 낼 것 같으면 STOP!이라고 말하고 엄마를 꼭 안아줄래? 조금만 기다려줘. 엄마가 더 노력할게.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사과를 하면 초등학교 2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나를 꼭 안아주면서 위로해 주었다. “엄마는 꼭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엄마, 힘내세요.”

     

  오프라 윈프리는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행기의 산소마스크 이야기 아시죠? 자신이 먼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먼저 엄마가 산소마스크든 구명조끼든 자신이 살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해야 내 금쪽같은 새끼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엄마 자신을 돌보고 난 뒤 집안일과 아이 돌보기를 해야 한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능력 밖의 책임감과 개나 줘도 되는 죄책감을 양쪽 어깨에 메고 아이의 공부를 봐주고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오히려 화만 부른다.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에서 어찌 고운 말이 나오고 좋은 음식이 만들어지겠는가. 엄마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데 시간을 먼저 써야 한다. 그런 뒤 정서가 안정되면 아이에게 초 밀착형 엄마 선생님이 되지 않아도, ‘널 위해 이렇게 고생하며 준비했어.’라는 식의 허울 좋은 식사 대신 달랑 라면 하나만 끓여줘도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신뢰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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