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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5. 2022

108배로 용서의 꽃을 피우다

- 108배해볼까 고소영도 했다는데 중에서-

  용서는 천천히 피어나는 꽃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108배는 내면이 맑아지면서 일상에서 통찰력이 좋아지게 되니 우연한 상황에서 찰나의 순간 용서라는 꽃을 피우게 도와주고 더불어 축복까지 선물할 수 있도록 도량을 넓혀준다. 딸아이가 치과 치료를 위해 이틀을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그날도 새벽에 일어나 병원 보조 침대에서 108배를 하고 난 뒤 오전 진료를 기다리려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옆 침대 환자분의 간병인이 틀어놓은 <포도밭 울 엄니>라는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힘들게 일을 하고 나서 아들이 준 초코 음료 하나를 일당으로 받고 “이거 하나면 족해”라고 말씀하시면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몸이 부서져라 농사일을 해오면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꾀병 한 번 부리지 않으시며 담백하고 유쾌하게 살아온 분이셨다. 다시 한번 할머니들의 ‘just do it' 정신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래, 시간이 없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마음이 울적하다는 둥의 핑계는 집어치우고 오롯이 지금을 살아내자!’   

  

  문득 31년 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시어머니로부터 쓸데없이 딸년만 싸질러 놓는다며 ‘거시기를 꾀매버려야겠다’는 모욕적인 말씀을 들으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 여섯을 낳으셨다고 한다. 아들이 귀한 집에서 딸을 낳을 때마다 들었던 그 치욕적인 말은 할머니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상처를 강제로 기억 저편 지하실에 가두어두고 베를 짜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탄생이 당신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 것일까? 살아생전에 손자들에게는 살갑다가도 유독 나만 보면 쌩하니 차갑고, 데면데면하게 대하셨던 할머니. 나는 어린 나이에도 손주들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내가 5학년 때인가 할머니께서 조금씩 치매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찾아다니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동네 어딘가에서 할머니를 찾았다. 


  그때 할머니가 뜬금없이 한복 속치마 속에서 눈깔사탕을 꺼내 주시며 “요거 아주 맛나다 함 먹어봐라”하시며 내게 주시는 거다. 그 사탕은 분명 오빠를 위한 것이었을 거다. 오랫동안 나는 한 번도 박하사탕이나 눈깔사탕 따위를 할머니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탕은 좀 오래되었는지 먼지도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안 주시더니 이제 와서 왜 이렇게 더러운 사탕을 주시는 거야? 안 먹어 치사해.’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사탕을 화단에 휙 던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할머니의 상처가 치매와 함께 잠시나마 지워져서 손녀인 내가 당신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저 예쁜 손주로 보인 것이다. 홧김에 버린 그 먼지 묻은 눈깔사탕은 사실 할머니의 순수한 사랑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할머니는 5년 정도 치매를 앓으시다 내가 중2 때 돌아가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따뜻한 정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거니와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희생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자 엄마에게는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밥을 차리고 엎어진 밥상을 치우고, 몇 번씩 대소변을 치우고 몸을 씻기고 머리채를 잡아 뜯기며 욕을 듣는 것이 일상의 반복이었다. 집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깨끗이 쓸고 닦아도 썩은 내가 진동했다. 나는 그 5년 동안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     

 

  할머니에 대한 미움과 죄책감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감정이었을까. 그날은 이상하게도 할머니가 이해되었다.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잊고 싶은 기억이 많았으면 자신의 기억장치를 강제로 셧다운 시키셨을까. 더 이상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고통받고 싶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누구보다 ‘just do it' 정신을 평생 실천하며 사시던 꼬장꼬장한 욕쟁이 우리 할머니, 그녀는 부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져서 마을에서 가장 베를 곱게 짜셨던 베짜기의 달인이셨단다. 그곳에서는 너덜너덜해진 당신의 마음을 그 야무진 손으로 촘촘히 꿰매고 홍역으로 저 세상에 먼저 보낸 딸들에게 맘껏 사랑을 표현하며 행복하게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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