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배해볼까 고소영도 했다는데 중에서-
108배를 하면서 좋아진 것 중에 또 하나는 결정 장애가 완화되었다는 거다. 과거의 나는 ‘반품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옷이든 신발이든 어떤 물건이든 구입하고 나면 그 가게를 이틀 내에 다시 방문했다. 특히 충동구매를 한 물건은 대부분 집에 와서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하거나 교환을 해야 했다. 사실 옷가게 직원에게 카드를 주며 결제를 할 때 항상 『더 해빙』에서 이야기했듯 해빙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로 기분이 불안하고 불편했었다. 이미 그 자리에서 내 마음속에서는 ‘이거 사려고 온 게 아닌데. 아, 생각지도 않은 지출인데’라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죄송한데요, 다음에 살게요.’라는 그 두 마디를 입에서 떼지 못했다. 옷가게 직원들이 그럴 거면 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았냐고 속으로 나를 비난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돈도 없는 주제에 왜 옷은 사러 온 거야?’라며 나를 무시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경으로 계산대 앞에서 결재를 하고 나면 좀 전에 옷을 입어보며 행복했던 감정이며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싹 사라졌다. 충동구매에 대한 죄책감만 들고 ‘또 자기 절제를 못했구나. 나는 왜 맨 날 이 모양이지?’라며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참회문을 독송하며 무릎 꿇고 몸을 낮춰 절을 하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임을 깨닫게 되자 내 결정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울할 땐 뇌과학』에서 세계적인 신경과학자 앨릭스 코브는 결단력을 키우기 위해 처음부터 거창한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면서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비된 듯한 상태에 빠지면 모든 게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지 선택하라. 삶의 어떤 부분에 단호히 결정을 내리면 다른 부분에 대한 결단력도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가 있다.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것을 행하되 거기에 의문을 달지 마라.”
어느 날 나는 이 신경과학자의 조언을 따라 식당에서 처음 마음이 가는 대로 망설임 없이 왕 안심 돈가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느끼함 대신 된장국의 깔끔함을 선택할걸’ 같은 후회는 1도 없었다. 느끼함 자체도 그대로 받아들였고 정 느끼하면 단무지를 더 먹으면 그만이었다.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이후에 어떤 감정이 들던 책임을 지겠다는 결정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쥐고 행사한다고 생각하니 내 결정에 만족감이 더 높아졌다. 요즘은 옷을 거의 구입하지도 않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면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3일 정도 묵힌다. 그 이후에 다시 들어가 보면 대부분 구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바로 삭제해버린다.
책 구입도 마찬가지다. 무분별하게 책값에 돈을 마구 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도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본 뒤 소유하고 싶은 책들만 장바구니에서 골라 구매한다. 절제와 통제라는 양쪽의 고삐를 잡고 나의 말을 조정하니 말이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목표를 알고 가게 되었다. 이처럼 108배와 함께 나의 소비 의사 결정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주는 장바구니를 나는 ‘마시멜로 장바구니’라고 부른다. 지금 먹는 것을 참으면 나중에 두 개의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다는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착안한 별명으로 나의 인내력 상승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나는 주로 밤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전에 108배를 해왔다. 새벽에 하는 것도 좋았지만 참회문에 맞추어 하루를 반성하고 좋았던 일이든 안 좋았던 일이든 다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나로 리셋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저녁에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얼굴의 화장과 몸의 때를 클렌저로 씻어내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는 절운동을 통해 씻어냈다. 기억은 한계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오늘 경험한 것들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금세 지워버린다. 하지만 절운동을 하면서 지금에 집중하게 되면 의식이 맑아지면서 오늘 일어난 많은 일들을 팝업창을 띄우듯 소환할 수 있었다. 감사할 일들을 다시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집착이나 욕심을 다시 놓아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