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배해볼까 고소영도 했다는데 중에서-
모든 꽃은 자기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난다고 한다. 그 자기 축복의 과정이 없으면 봉오리는 ‘꽃’이라는 완성을 경험할 수 없다. 새벽에 일어나 해오던 절운동이 보름쯤 되었을 때인가 나는 아주 신기한 체험을 했다. 여느 날처럼 새벽에 일어나 참회문을 들으며 108배를 하는데 ‘당신은 축복입니다’라는 말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내 입에서 ‘그래 엄마가 젖 줄게, 배고팠지? 엄마가 젖 줄게. 넌 우리의 축복이야. 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야. 넌 우리의 축복이야.’라는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엄마는 나를 낳고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미역국도 못 얻어먹고 할머니로부터 더 심한 시집살이를 당하셨다고 했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젖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몇 날 며칠을 빈 젖꼭지를 물고 울다가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분유를 먹게 되었다는 얘기를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나는 젖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빈 젖을 입에 물고 배를 고르며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핏덩이가 무슨 죄가 있었겠는가.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인데. 그래서 나는 40년 넘게 울고 있는 봉오리로만 존재했던 게 아닐까. 꽃으로 피어보지도 못한 채 그저 말라비틀어져 가는 봉오리로.
존 브래드 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보면 신생아기 때 안기고 싶고, 신체적 접촉을 바라고 젖을 먹고 싶은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게 된다고 한다. 김형경의 『사람풍경』에서도 아기 때 형성된 분노가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 “무의식에 억압된 분노는 아기 때 형성된 것이며 특히 욕구를 좌절시키는 엄마를 향해 품는 감정이다. 엄마는 아기가 경험하는 최초의 사람이면서 동시에 최초의 분노의 대상인 것이다. 아기는 분노의 대상이 또한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한 채 내면 깊은 곳으로 억눌러 감춘다.
그렇게 해서 억압되고 내면화된 분노는 신경증의 원인이 되며 언젠가는 되돌아와 우리의 삶을 공격한다.”
이해가 갔다. 아무리 아기라고 하여도 본능적으로 나는 내가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수치심을 뿌리내렸을 것이다. 이는 내가 본연의 나 자신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방해했을 것이고, 딸이라는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존중받지 못함으로 인해 나 스스로 건강하지 못한 자기애를 키웠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108배 참회문 중 ‘당신은 축복입니다’에서 기억에도 없는 갓난쟁이 시절의 나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그렉 브레이든은 『절대 기도의 비밀』에서 축복은 상처받은 감정을 몸 안에 가두어두기보다는 해방시키고 치유의 빛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108배를 하면서 내게 축복을 빌어주니 마음이 밝아지고 환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컴컴한 무의식 속 지하실에 가둬 둔 아기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가장 최초에 상처를 입은 내면아이와 첫 조우를 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갓난아기인 내면아이는 성인아이인 나에게 먼저 용기를 내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것이다. “이제 그토록 오랫동안 버려두었던 나를 좀 챙겨주세요. 사랑해주세요. 나를 소중한 존재로 대해주세요.”라고 울부짖으면서. 책을 통해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 아이와 계속 소통을 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렇게 실체를 경험한 것은 바로 108배를 통해서였다.
내면에 있는 아기를 축복해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냉하고 무거운 내 몸이 뜨거워지고 가벼워졌다. 녹슬고 삐걱거리던 온몸에 윤활유가 발라진 것처럼 가볍게 날아다니듯 집안일을 했다.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그 체험을 계기로 나는 나를 위해 축복의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넌 축복이야, 넌 우리 집의 축복이야. 넌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야. 네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 항상 웃음기를 띄게 되었다. 드디어 내가 봉오리를 뚫고 나와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이게 바로 내면에 치유의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미백 크림을 매일 바르고 팩을 한다고 해서 노란 피부가 하얗게 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맑아진다. 108배도 마찬가지로 매일 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 완전무결한 아기였을 때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마음이라는 그곳이 예전보다는 훨씬 맑아진다는 것, 가벼워진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날, 내가 상대방에게 의도하진 않았지만 말실수한 것 같은 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몸까지 천근만근인 날은 무조건 108배를 했다. 딱 15분만 하고 나면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오롯이 감사와 사랑만 남았다. 나를 작으면서도 크게,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해주는 단 15분의 마법 같은 시간! 이렇게 절운동을 통해 몸을 움직이면 분명 불과 몇 시간 전의 나보다 그리고 어제의 나보다 몸도 마음도 더 아름다워진다. 108배 절운동 중독! 아, 영원히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 내 무릎이 허락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