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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5. 2022

클림트, 키스, 그리고 미술관에서 콧바람 쐬기

- <너무 힘든 날엔 그냥 그림을 봐요> 중에서-

 사람이 아니라 그림에게 내 마음을 들킨 적이 있는가? 마음을 흔들어 눈물이든 웃음이든 짓게 만드는 그림. 저 깊은 내면의 나에게 말을 거는 그림. 나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다시 일어서게 해주는 그림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인지. 나에게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품게 한 첫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이다. 한참 취업 준비를 하던 대학교 4학년 때 우연히 백화점 홍보팀에서 근무하는 한 선배가 VIP 선물용으로 기획해서 나온 거라며 탁상용 달력을 내게 주었다.

      

  “알지? 구스타프 클림트. 그의 유명한 대표 작품들로만 엮은 거야. 예쁘게 빠졌더라.”     

 

  선배가 이 화가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투로 시니컬하게 말하는데 대뜸 모른다고 하기가 그랬다. 비문화인처럼 비칠까 봐서. 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빛 색채들과 무아지경에 빠져있는 듯한 그녀의 표정에 압도되어 내 두 눈에는 그 그림을 처음 본 티가 여실히 드러났을 거다. 20년도 넘은 오래전 일이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세 가지 생각만은 선명하다. ‘아, 나도 이런 키스를 한 번 해보고 싶다’와 ‘이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다’ 그리고 ‘클림트라는 이 화가를 더 알고 싶다’      


 물론 그 이후 나는 이 세 가지 소원을 모두 이루었다. 그 키스의 주인공은 지금쯤 어느 하늘 아래에서 예쁜 가정을 꾸려 잘 늙어가고 있겠지. 클림트에 대해서는 책을 사서 읽게 되며 ‘그림의 뒷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구나’를 발견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클림트보다 그의 제자인 에곤 실레라는 화가와 그의 작품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20대 중반에 친구와 함께 간 유럽 배낭여행 중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키스>의 실제 작품을 관람했으니 소원은 제대로 이룬 셈이다.    

       

  클림트키스그리고 미술관에서 콧바람 쐬기

  사실 진로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이십 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진로 못지않게 중요한 화두는 바로 ‘사랑’이다. 심리적 결핍을 완벽하게 채워줄 단 한 사람, 완벽한 일체감을 느끼게 해 줄 소울메이트를 찾는 일. 지금은 그런 완벽한 대상은 세상에 없으며, 내 안에 존재하는 아니무스(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와의 통합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천둥벌거숭이처럼 철없이 헤매던 시절에는 내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아마도 그러한 낭만적 로망을 클림트 작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루고 싶지 않았나 싶다. 클림트에 대한 사랑은 결혼과 동시에 시들해졌지만 그는 나를 미술의 세계로 입문하게 하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의 즐거움을 최초로 알게 해 준 첫 화가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인 <키스>와 <다나에>, <여성의 세시기>가 전사된 타일로 인테리어를 했던 신혼집, 그 공간과 그 시간은 그의 작품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운 덕분에 지금의 딸을 임신하는 축복을 받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면서 한 동안 그림에서 철저하게 멀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림에게 다가가기 시작한 게 아마도 아이가 다섯 살 무렵 정도인 것 같다. 미술관에 가서 콧바람을 쐬고 싶은 이유도 있었지만 아이에게 미적인 감각과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길러주고 싶은 교육적 의도가 더 컸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미술관 관람이 아이 위주였기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그림과 마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면 행복했던 이유가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느리게 나만의 걸음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은 소통과 공감의 대상이라기보다 일상의 탈출구, 비현실 세계로의 도피의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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