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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5. 2022

그림과 내면의 대화를 나누자

-<너무 힘든 날엔 그냥 그림을 봐요> 중에서-

  그림을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림과 내면의 나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첫 경험은 바로 천경자의 그림을 통해서이다. 십 년 전 육아로 힘들어하던 시기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녀의 이국적인 그림들을 처음 마주했었다. 첫 느낌은 아름답다 라기 보다 왠지 쓸쓸하다는 거였다. 화려한 색채와 강렬한 붓 터치 사이사이 흐르는 상처와 고독의 모세혈관을 보고야 만 것이다. 조용히 흐느꼈었다. 제 멋대로 올라오고야 마는 울컥함을 꿀떡꿀떡 삼키면서.  

   

  머리에 화관을 쓴 슬픈 눈의 여인들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울어도 괜찮아. 울어. 많이 힘들지? 네가 없어진 것 같지? 그래도 그 시간들도 곧 지나갈 거니까 조금만 버텨. 그러고 나면 너도 네 날개를 펼칠 시간이 꼭 올 거야.”     

  특히 서른다섯 마리의 뱀들이 뒤엉켜있는 <생태>라는 작품은 내게 이렇게 말을 하며 삶을 살아낼 용기를 주었다.  

  

  “지금의 너 자신이 나처럼 징그럽고 혐오스럽지? 그렇지만 그건 네가 만들어낸 거짓 환상이야. 너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내가 다리도 없이 기다란 몸만 있고 차가운 비늘에 뒤덮여 있는 이상한 몸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나는 나야. 그게 나야. 그게 너고. 이렇게 비슷한 숙명을 가진 종족들끼리 뒤엉켜 살며 서로 위로하고 용기를 주며 살면 되는 거야. 그러니 너답게 살아. 너를 너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 속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 괜히 발 달린 짐승들 부러워하면서 괴로워하지 말고. 그냥 너 자신에게 만족하고 지내는 거야. 그게 삶이야.”     그때 처음으로 느낀 그림과의 짧은 교감은 절대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나는 그림이 가진 생명력과 치유력을 강하게 믿게 되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들은 치유를 넘어서 창조하는 삶으로의 도전을 꿈꾸게 했다. 그녀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통의 적나라한 은유’ 딱 그거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살을 찢고 저 밑바닥으로 내려가 소용돌이와 혼돈 속에서 고통의 실체를 산 채로 잡아온다. 이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고통에 은유와 색을 입혀서 이 괴물을 서서히 정복해 나간다. 지독한 슬픔 뒤에 숨지 않고 붓이라는 무기를 들고 슬픔과 정면 승부한 여전사! 자신의 상처를 그림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아픈 영혼들을 치유해주는 상처 입은 치유자! 


  그녀를 닮고 싶었다. 나도 내 마음에 있는 알 수 없는 괴물을 산 채로 잡아 은유로 포장하여 벽에 걸어두고 싶었다. 그게 시로 표현될지 글로 표현될지 모르겠지만(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으니) 내 눈물이 고여 있는 글을 읽고 누군가도 나처럼 위로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작은 꿈을 꾸었었다. 프리다 칼로의 그림은 그렇게 내 안에 있는 창작의 본능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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