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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Sep 25. 2022

내가 있는 곳을 나만의 미술관으로 만들어라

-<너무 힘든 날엔 그냥 그림을 봐요> 중에서-

     

  나는 그림을 미술관에 가서 봐야만 제 맛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미술관은 차갑고 도도하며 불친절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그곳에 온기를 더하고 관객과 그림 사이를 실 전화기로 연결해 주는 천사가 있다.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친절한 해설로 풀어내는 그림 이야기는 그림에 겹겹이 덮여있는 베일을 한 꺼풀 벗겨낸다. 점점 그림 속 주인공들이 살아 움직이고, 그림 속 배경이 현실로 펼쳐지도록 우리의 눈과 뇌에 발동을 건다. 타임머신을 태워 그림이 그려진 그 시대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파일럿! 바로 도슨트다.  

    

  하지만 천사 같은 도슨트를 만나는 행운을 항상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바쁜 일상 속에서 미술관에 한 번 가려면 큰맘 먹고 가야 하므로 여간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그림을 통해 내면의 나와 조우하는 즐거움을 맛봐버린 나는 그림 보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격으로 다른 대안책을 찾았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 그 책을 읽는 공간은 그곳이 어디든 바로 나만의 편안한 미술관이 되었다. 

     

  미술과 관련된 책을 읽는 가장 큰 장점은 다양한 분야의 도슨트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각자가 가진 배경 지식, 삶의 경험, 글을 쓰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그림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을 듣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어 프리다 칼로의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자화상>에 대해서 이주은 미술사학자는 「그림에, 마음을 놓다」에서 프랑수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 속 슬픔을 가져온다. 그녀의 슬픔은 기꺼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는 초연함으로 들린다.   

   

  반면에 박연준 시인이 「밤은 길 고, 괴롭습니다」라는 책에서 해석한 프리다 칼로의 슬픔은 처절하고 단호하게 끊어내겠다는 비장함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작가가 어떤 분야에 발을 담그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림을 풀어놓은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그림을 더욱 풍성하게 만날 수 있다. 그로 인해 나는 내면에서 일렁이는 마음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안목까지 얻었다. 

     

  한없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한껏 울고 싶은 날이 있지 않는가? 그런 날에 나는 정여울의 「빈센트 나의 빈센트」 속 <슬픔>과 <영원의 문>을 들춰본다. 애잔한 마음으로 그림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고 나면 어느새 마음이 한결 정화된 기분이 든다. 고흐의 그림뿐만 아니라 그 그림 속 절망에 대해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풀어낸 작가의 해설이 더해져 마음이 일순간 따뜻해진다.   

   

  <슬픔>이라는 작품 속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가 내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 “왜 또 뭣 때문에 그리 슬픈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니?” 그러면 나는 내 마음속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뱉어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내 말을 듣던 그녀는 자신의 슬픔은 잠시 접어두고, 가늘고 앙상한 팔로 나를 꼭 안아주며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그런 날도 있는 거야. 먹구름도 더 이상 눈물을 머금고 있기 힘드니까 비를 쏟아내는 거잖아. 눈물샘도 슬픔이 꽉 차서 답답하니까 눈물을 내보내는 거야. 그뿐이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내보내고 나면 개운해질 거야.”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꼭 감사로 끝이 난다.    

  

  “언니는 눈물샘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내 작은 슬픔마저 위로해주네요. 저도 언니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품을 게요. 고마워요. 언니도 더 이상 아프지 마요.”      

  그녀의 온몸에 배어있는 슬픔을 어루만진다. 쓰다듬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온기로 저 깊숙한 슬픔까지 녹여낸다.    

      


  두 번째로 그림을 편하게 만나는 공간은 바로 유튜브와 앱이다. 먼저, <서정욱 미술 토크>는 서정욱 갤러리의 관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그녀는 그림 감상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림의 뒷이야기를 설명해준다. 그림을 오랫동안 화면에 띄어놓기 때문에 굳이 멈추지 않고도 설명을 들으면서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처럼 느긋하고 여유 있게 감상하는 것을 선호하는 달팽이 과에게는 최적의 공간이라 하겠다. 주로 늦은 밤에 접속하는데, 듣고 있으면 그 우아함에 취해 어느새 잠이 스르르 온다. 사실 잠만큼 마음속 파도를 빠르게 잠재우는 것이 또 있으랴. 그런 의미에서 그녀를 심리 치유사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그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미술사와 미학에도 관심이 있다면 그녀의 강의를 딱 한 번 들어보라. 15분 내외로 짧지만 쉽고 은근 재미가 있다. 천천히 책을 넘기며 읽는 것 같아서 마치 e북을 듣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전공도 아닌데 피곤하게 미술사까지 알아야겠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더 깊이 소통하고 싶기에 미술사 강의를 가끔 듣는다. 적당히 듣기! 이해 안 되면 패스! 부담감은 전혀 없다. 시험 볼 것도 아니니까.    

     

  <널 위한 문화예술>은 젊은 여성 에디터가 작가와 작품의 뒷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재구성하여 비교적 빠른 속도로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다. 호기심을 유발하는 각각의 영상의 주제도 매력적이고 내용도 상당히 알짜배기로 이루어져 있다. 10분 내외의 짧은 영상을 다 보고 나면 심장 박동 수가 급격히 상승한다. 미술관을 한 바퀴 뛰면서 관람한 기분마저 든다. 살짝 어지럽기도 하는데 이건 순전히 나이 탓인 듯, 영상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특히 내가 빠뜨리지 않고 듣는 것은 이번 달에 꼭 가볼 만한 전시 Top4나 미술과 관련된 책을 소개해주는 영상이다. 이 채널은 주로 낮에 기분이 다운되었거나 몸이 피곤할 때 접속하게 된다. 그러면 눈과 귀가 번쩍 뜨이면서 드링크제 한 병을 마신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겠지만. 

      

  <데일리 아트>는 ‘1일 1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무료 앱이다. 매일 새로운 작품을 가독성 있는 해설과 함께 만날 수 있다. 주로 한가한 시간에 가벼운 마음으로 멍 때리고 보기를 추천한다. 단지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과 도자기 작품도 감상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편이다. 내게는 좋아하는 화가의 몰랐던 작품을 아는 즐거움도 크지만 호기심이 가는 작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 한 번 7,900원만 결재하면 프리미엄으로 모든 해설을 한글로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기록보관소가 있어서 휴대폰 안에 나만의 미술관을 만들 수도 있고, 그림을 공유할 수도 있는 참 매력적인 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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