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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Oct 09. 2022

엄마가 되자 괴물로 변해버린 나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딸이 되자> 중에서-

   하지만 성실한 남편을 만나 삶이 비교적 순탄한 듯 진행되는가 했으나 출산과 함께 육아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한 번도 직면하지 못하고 해소되지 못했던 내면의 그림자 속 부정적인 감정들. 그것들이 울분을 터뜨리듯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왔다. 내 능력을 벗어난 희생이 결국 화를 부른 것이다.     


  열등감은 아이를 최고로 키워야겠다는 헛된 목표로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슈퍼 워킹맘을 자부하며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은 블로그 속 글과 정보를 보고 그들과 끊임없이 비교 경쟁하며 괴로워했다. 뒤집는 것, 말을 하는 것, 기저귀를 떼는 것,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 이유식을 먹는 것 등. 하나부터 열까지 경쟁하는 느낌이었다. ‘남들보다’ 빠르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거다. 오로지 아이 자체의 성장 속도가 아니라 블로그 속 또는 주변 아이들과의 비교를 통한 성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때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매일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 자체에서 온전한 기쁨을 느끼지 못함에 지금도 가끔 가슴이 아프다.   

   

  아이가 커서 자기 의사를 말하기 시작하고 학습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5세 이후부터 아이가 기대 이상으로 잘하고 더 높은 성과를 보이기 시작하자 기대치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반면에 아이가 조금만 이해를 못 한다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아이의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손찌검은 불시에 튀어나와 아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사과를 반복해서 하고 내 가슴을 치면서 뒤에서 울어도 그때뿐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도통 알지 못했다. 내가 나를 제어하지 못하겠는 거다. 아이도 더 이상 사과하는 나를 믿지 않았다. 아이는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음에 또 때릴 거잖아. 이제 안 믿어.”라고 말했다. 당시에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나의 폭언과 폭력은 그 누구를 완벽히 닮아있었고 내가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부지불식간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아빠에 대한 증오와 거기에서 전이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까지 더해져 괴물로 변한 분노의 감정은 내 소중한 아이를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영리하고 뭐든 혼자서 척척 잘하는 아이는 나에게 멋진 액세서리가 되어주었다. 아빠가 나에게 바랐던 것처럼. 하지만 엄마에게서 안정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존중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조금만 실수를 해도 “내가 멍청해서 그래, 난 쓸모없는 존재인가 봐.”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서도 조금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를 건드리면 참지 못했다.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피해를 주지는 않았지만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똑똑하지만 예민한 아이’로 낙인찍혀 있었다. 엄마인 내가 해소하지 못하고 토해낸 분노를 아이가 뒤집어쓰고 본인도 어쩔 줄 몰라하며 엉뚱한 곳에서 분출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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