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다른 딸이 되자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른 딸이 되자> 중에서-
나는 더 이상 ‘썩은 냄새나는 알’인 과거 속에 갇혀 내 소중한 딸아이의 마음까지 오염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처럼 똑같이 열등감과 수치심, 두려움과 분노에 휩싸여 불안정한 상태로 괴롭게 살아가게 할 수는 없었다. 거의 전복에 가까운 대변혁이 필요했다. 최진석 교수님의 말을 빌리자면 과거의 나를 살해해야 했다. 아빠와 얽혀있는 이 단단하고 썩은 연결고리를 과감히 끊어내고 새로운 나로 재탄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시작한 마음공부를 위해 우선 나만의 마음공부 대학을 설립하였다. 모든 강좌는 내 마음이 가는 대로 개설했다. 심리학에서 철학, 종교학에서 죽음학, 영성학에서 과학까지 그 과목은 소위 전방위적이었다. 거의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냄새나고 더러운 내 내면의 지하실에 지식을 쌓고 쌓고 또 쌓았다. 어느 순간부터 가장 밑바닥에 들러붙어있던 더러운 감정의 쓰레기들이 흘러넘치더니 내 안이 비워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다. 아니 내 어찌 아빠에게 용서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아빠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인 기억을 흘려보냈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빠가 불쌍했고 죄송했고 감사했다. 미움이나 원망이나 분노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 씻겨 나갔다.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았고 한 인간으로 이해했으며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니 에르노는 또 다른 작품인 《남자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를 딸이면서도 제삼자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아버지를 한 남자이자 인간으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글을 썼다. 종합적으로 해석해보면 그녀는 그를 교양 없고 품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표현할 줄 모르는 ‘아비의 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 순수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울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의 아빠와 많이 닮아서. 그녀가 느낀 감정이 내가 느낀 감정과 너무나 비슷해서.
“어쩌면 그는 다른 딸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라는 문장 앞에서는 오열하고 말았다. 나는 한 번도 아빠에게 애교를 부리는 딸이 아니었다. 언제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할 말만 하는 아빠의 표현대로 ‘버릇없는 년’이었다. 아빠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집을 지어 파는 일을 할 정도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사셨다. 항상 깨끗이 손수 지은 예쁜 양옥집에 살게 해 주셨고 결국에는 본인의 수준에서는 가장 최선의 결과물인 3층 상가 건물을 지어 올릴 때까지도 나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고자 하는 그의 엄청난 성실성과 책임감 따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피나는 절제와 인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으니까. 모자랐으니까. 그저 나는 아빠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없이 사과도 없이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엄마나 우리에게 말을 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마음공부의 진행과 함께 이 책을 읽고 그를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괴팍한 성질은 자신의 꿈이 좌절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원치 않은 직장에서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자존심을 구기며 사는 삶에서 그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었다는 것을. 우악스러운 성질은 예쁘고 똑똑하지만 좀처럼 고분고분하거나 나긋나긋하지 않은 엄마에게 자신이 사내임을 믿게 해주는 힘이었음을.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돈을 벌어오기에 그 정도의 감정 배설쯤은 눈감아 주리라고 믿었을 것임을.
아무리 그가 잘못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다른 면까지 모두 싸잡아서 나쁜 부모로 추락시킬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나는 아빠의 희생으로 자랐고 아주 풍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It’s not the whole story’ – 그의 안 좋은 쪽의 이야기가 그의 전부가 아닌 것이다. 나는 그럴 자격은 없지만 아빠를 한 인간으로서 부모로서 재해석했다. ‘밖에서와는 정반대로 가정에서는 교양 없고 품위는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이며 표현할 줄 모르는 부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산 여리고 정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