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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Jul 25. 2020

캡슐 옷장에서 찾은 자신감


옷장의 문을 열어 내면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면 커다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자 사투를 벌이면 자연스레 더 나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어떤 옷을 입었을 때 편안하고 자신감이 생긴다면 삶의 만족도는 높아진다. 


                                                                          - 제니퍼 바움가르트너의 「옷장 심리학」 中에서-     



  지금 당장 당신의 옷장 문을 열어보라. 5분 이내에 당신이 가장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옷을 고를 수 있겠는가?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지금 캡슐 옷장 만들기가 필요한 사람이다. 캡슐 옷장이란 표현을 들어보았는가? 이는 1970년대에 수지 폭스라는 영국의 부티크 오너가 30 ~ 40개의 의류를 통해 완벽한 옷장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한 개념에서 나온 옷장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80년대에 도나 카란이라는 디자이너가 이러한 개념을 반영한 컬렉션을 발표하며 캡슐 옷장이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요즘은 미니멀리즘을 반영하여 ‘333 프로젝트’라는 이름하에 좀 더 창의적으로 나만의 컬렉션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 또한 3년 전부터 미니멀 라이프를 조금씩 실천하면서 옷장에도 구조조정을 세 차례 했었다. 사실 옷은 많이 줄어들어 옷장이 정리된 느낌은 있었지만 단순하고 체계적이지는 못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333 프로젝트의 캡슐 옷장이다. ‘33벌의 옷으로 3개월을 버티기’라는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동참해보기로 한 것이다. 33벌의 옷을 고르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옷장에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버리거나 기부하는 형태가 아닌 재배치의 성격을 띠었다. 결혼식과 같은 행사 때 입거나 여행지에서나 입는 옷은 다른 칸으로 옮기고 집에서 입는 옷은 개어서 서랍장으로 옮겼다. 여름이 아닌 계절의 옷들도 모두 다른 칸으로 옮겼다. 마지막으로 33벌의 여름옷들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분류작업을 하여 같은 종류끼리 옷장에 걸었다. 가장 편하게 자주 입는 옷인 원피스를 앞에 배치하고 그다음에 윗옷, 외투, 스커트, 바지 순으로 정렬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일은 나만을 위한 전담 스타일리스트, 바로 나 자신을 부르는 것이다. 

    

  캡슐 옷장을 만들면 가장 좋은 점이 옷을 코디할 맛이 난다는 거다. 옷이 종류별로 여유 있게 분류되어 있으니 옷을 고르기가 참 편하다. 간혹 그동안 같이 입지 않은 티셔츠와 바지를 매치했다가 만족스러운 룩이 나올 경우 진짜 뿌듯하다.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봐도 엄지 척을 해줄 거야’라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나만의 룩을 탄생시켜 가다 보면 창의력도 덩달아 높아지는 걸 느낀다.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허쉬만은 소비자가 ‘소비 창의성’을 발휘하면 소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가 아닌 사용으로 소비 문제를 해결하고, 옷이 시장에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옷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소비자의 권리를 회복시켜 준다는 점에서 소비 창의성은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소비 창의성을 장착하면서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을까?’라는 어이없는 질문도 사라졌다. 단지 캡슐 옷장 앞에서 고객과 스타일리스트 1인 2역만 하면 OK!   

   

  캡슐 옷장을 이용하면서 옷을 살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자 자연스럽게 충동구매나 과소비 문제도 해결되었다. 33벌의 옷의 구성이 한눈에 보이니 내가 이미 많은 종류의 옷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정서적 쇼핑’이라는 것을 해왔다. 그 옷이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고파서 쇼핑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마음이 우울하거나 외로울 때 사랑받는다는 느낌, 옷이 아닌 그 느낌을 갖고 싶어서 옷을 사게 되었다. 영혼까지 팔 듯 한 점원의 친절한 태도와 새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만족스러운 내 모습에 자아도취 되어 망설임 없이 카드를 내밀고 마는 것이다. 쇼핑으로 잠시 잠깐 마음속 허기를 채우기는 하지만 이는 생 초콜릿처럼 금세 녹아 사라져 버린다. 새로 산 옷 덕분에 한두 번 예쁘다는 말을 들을 때는 ‘역시 사길 잘했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자신감과 자존감에까지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나는 처음에 여름옷 캡슐 옷장을 만들고서 내가 여름 원피스를 무려 7벌(무릎길이 5벌, 롱 원피스 2벌)이나 가지고 있고, 상의가 14벌(민소매 옷 3벌, 반팔 블라우스 5벌, 검은색 면티 2벌, 흰색 면티 2벌, 긴팔 블라우스 2벌)이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론 10년이 넘는 옷들도 있지만 ‘참 꾸준히 옷을 사 모아 왔구나’하며 한숨이 나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의 옷들이라서 앞으로도 5년은 더 입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은 바지가 종류별로 다양해서 기분대로 다른 룩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연청바지, 검정 일자 통바지, 겨자색 리넨 슬랙스 바지, 깅엄 체크 스키니 바지, 검정 반바지 이렇게 전혀 다른 종류의 바지가 5벌 갖추어져 있어서 또다시 새로운 옷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거다. 이처럼 내가 어떤 종류의 옷을 몇 벌 가지고 있느냐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실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캡슐 옷장 바운더리 안에서 나의 스타일을 만들겠다는 책임감, 더 이상 예전의 방만했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자율성이 살아나게 된다. 즉 내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옷장 하나 정리했을 뿐인데 일석 몇 조의 이득이지 않는가?   

  

    나만의 컬러를 찾아 패션 무력증에서 벗어나자 

  정리된 옷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어떤 스타일의 옷을 입어왔는지 어떤 색깔의 옷을 좋아하는지 옷에 관한 나의 역사가 보인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우울이나 불안,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패션 우울증이나 패션 무력증에 대해서 들어보았는가? 매번 비슷한 스타일의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자신을 꾸미는 데 거의 시간을 쓰지 않으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싫어한다면 자신의 마음을 세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원래 패션에 관심이 없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다면 좀 더 솔직해지자. 패션 센스가 좋다는 말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패션에 관심은 있지만 나에게 어떤 옷이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내면에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센스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능을 묻어두는 이유는 현재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은 나 자신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끼고 기분이 좋으니 표정까지 밝아지는 거다. 따라서 저절로 자신감이 밖으로 베어 나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가 멋지지 않다고 느끼겠는가?  

    

  나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알고 있으면 디자인과 무관하게 나를 돋보이게 하기 쉽다. 퍼스널 컬러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퍼스널 컬러란 사전적인 의미로 피부, 머리카락, 눈동자 색 등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신체 색상을 말한다. 크게는 웜톤과 쿨톤으로 나누는데 좀 더 세분화해서 봄 웜톤과 가을 웜톤, 여름 쿨톤과 겨울 쿨톤으로 나뉜다. 오랫동안 패션 실험을 해온 데이터에 비추어 나를 분석해 보자면 피부가 약간 노란 바탕에 분홍빛을 띠고, 진하거나 탁한 색상보다 파스텔 톤이 잘 어울리고, 금 액세서리보다 은이나 백금이 잘 어울리고, 코랄보다 핑크색 립스틱이 잘 어울리는 것으로 보아 여름 쿨톤에 해당한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퍼스널 컬러라고 한다. 나는 과거에 색깔 감각이 덜 발달한 시기에 진한 파란색 스웨터와 핫 핑크 코트를 샀던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그 옷을 입으면 얼굴이 더 탁해 보이고 입고 있는 내내 종일 답답함을 느꼈었다. 사실 그 옷들은 겨울 쿨톤에게 어울리는 컬러였던 것이다. 비싸게 주고 산 게 아까워서 계절마다 한 번씩 꺼내 입기는 했지만 옷장 정리를 하면서 모두 구조 조정했다.   

   

  자신의 톤에 어울리는 컬러의 옷을 입으면 분명 더 편안하고 예뻐 보인다. 요즘은 퍼스널 컬러를 진단해 주는 곳도 많이 있다. 도저히 컬러 감각이 없고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을 꼭 찾고 싶다면 방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무채색이 아닌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어보겠다는 용기이다. 도전할 마음이 생긴다면 주변의 친구 중에 옷을 좀 입는 친구에게 옷 사러 가는데 봐달라고 부탁해보는 거다. 친구와 옷가게 점원 최소 2명이 ‘OK'를 한다면 그 색깔은 나에게 보통 이상은 어울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종종 다른 색상의 옷에 도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기분도 밝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게 된다. 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겸 주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옷을 구입했었는데 긴가민가한 색상의 옷을 선택할 때는 나만의 비법이 있다. 바로 휴대폰으로 모델 얼굴을 제외하고 두 가지 색상의 옷을 사진 찍은 후 크게 확대해서 거울 앞에서 내 얼굴 아래에 대고 비교해 보는 거다. 어떤 색상에서 자신이 짓는 미소가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 옷이 정답이다.           


   나만의 시그니처 룩을 갖는다는 것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니 이제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자. 시그니처 룩이란 표현을 들어보았는가? <그라치아> 패션 잡지의 에디터 김민정은 시그니처 룩은 단순히 ‘단벌 패션’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사상을 담은 상위 패션 코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티브 잡스와 같이 한 가지 스타일을 고수한 방식을 시그니처 룩의 범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기 자신의 매력을 이해하고 있고 나다움을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인생의 시그니처 룩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김민정 에디터는 또 다음과 같이 패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패션은 단순히 옷을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세포 속에 담긴 수만 가지 사항들을 한 벌의 옷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미학이다”     

  정말 멋진 표현이지 않은가? 우리의 몸은 60억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또한 심리학자 구스타프 융의 주장대로 우리는 천 개의 가면을 지니고 있어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가면(페르소나)을 쓰며 관계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미지의 나가 얼마나 많을 것이며 새로운 나를 발견해 가는 일은 얼마나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겠는가? 그들을 깨워 밖으로 끌어낸 뒤 또 다른 나를 눈으로 확인하기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패션인 것이다. 


   나 또한 여전히 가장 나다운 시그니처 룩을 찾고 있는 중이다. 현재는 나의 캡슐 옷장 속에 옷들을 보고 대표성을 띠는 하나의 색상이나 디자인의 옷을 말하기는 곤란하다. 다만, 원피스나 점프 슈트를 선호한다는 측면에서 작은 키를 보완하면서 세련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과 심플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의 상의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소녀다움을 간직하려는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나는 왜소하고 작기 때문에 드레시한 의상이나 딱 떨어지는 정장 스타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옷을 입으면 왠지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하다. 밝고 세련되면서도 지적인 느낌을 주는 의상이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그렇다고 시그니처 룩을 찾겠다며 이 옷 저 옷을 사 입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칫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르며 내 주관이 흔들릴 수도 있다. 현재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옷들로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창조해내며 필요한 옷들을 하나씩 서서히 구입해나가면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패션 롤모델이다.        

  

 패션 롤 모델 만들기 

  나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배우들의 패션도 유심히 보는 편이다. 많은 인물이 나오는 장면에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캐치하면 옷장으로 가서 그와 비슷한 코디를 해본다. 만약에 입어보았을 때 어울리면 그 자리에서 돈 한 푼 안 들이고 득템을 한 거다. 새 옷을 되도록 이면 구입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지켜져서 뿌듯하기까지 하다.      

  나의 패션 롤 모델은 정려원과 한지민이다. 내가 40대 중반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젊은 감각의 옷을 선호하기 때문에 그들의 패션에 끌리는 듯하다. 정려원은 워낙 여성들의 워너비 패션스타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마른 몸을 잘 보완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멋스럽게 소화하기 때문에 참고할 만한 코디가 많다. 특히 그녀는 레이어드 코디를 정말 잘하는데 이는 캡슐 옷장 주인장에게 꼭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다. 한 번은 모 드라마에서 입고 나온 블랙 뷔스티에 롱 원피스에 청바지를 레이어드 해서 입은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검색해 보니 6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옷인 것이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쇼핑몰에서 비슷한 디자인을 찾다가 결국 자주 애용하는 네이버 아웃렛 윈도 쇼핑몰에서 거의 흡사한 디자인의 옷을 발견했다. 브랜드 옷을 70% 세일을 해서 6만 원대에 구입을 했으니 완전 초득템을 한 거다. 실제 소재도 좋고 입었을 때 예쁘다는 말도 여러 번 들어서 지금은 완소 아이템으로 2년째 봄과 가을에 자주 입고 있다. 

     

  한지민의 경우에는 아담한 사이즈가 나와 비슷해서 드라마에서나 사복 패션을 눈여겨보는 편이다. 청바지에 코디하는 상의의 스타일이랄까 스커트의 길이, 외투의 길이나 스타일 등을 주로 보는 편이다. 키가 큰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어도 간지가 나지만 나처럼 키가 작은 사람들에게는 비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음에 들어도 한효주나 한고은처럼 키 큰 연예인의 옷은 감상만 한다. 이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얻은 나만의 노하우다.

      

  그러나 단지 스타일만으로 롤 모델을 정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삶의 태도나 가치관도 나와 비슷하거나 배울 점이 있을 때 롤 모델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정려원의 경우에는 패션으로든 그림으로든 끊임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실험정신이 참 마음에 든다. 고여 있지 않겠다는 밝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와 맞닿아 그녀의 패션뿐만 아니라 그녀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모 인터뷰에서 그녀가 “저는 표현주의자이고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무척 좋아해요.”라고 한 말에 정말 공감이 갔다. 나도 딱 그러하니까.    

  

  한지민의 경우에는 <두 개의 빛:릴루미노>라는 허진호 감독의 단편 영화에서 시각 장애인 역을 너무도 현실감 있게 연기하는 모습에 처음으로 반했었다. 힘든 여건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그녀가 다양한 복지 행사에 참여하며 꾸준히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게 되었다. 그녀를 통해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우러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나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우선 나 자신부터 긍정의 힘을 믿으며 살자!’라는 마음으로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패션 롤 모델은 자신의 외면을 넘어서 내면에 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진짜가 아닐까?        


   명품 옷이 아니라 명품 패션 센스 갖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옷장에 단비 같은 활력을 불어넣어줄 진짜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선생님들을 모셔보자. 나는 비싼 옷이나 명품 옷으로 휘감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더 멋있고 아름다워 보인다는 생각은 이제는 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명품 백을 몇 개씩 가지고 있고 명품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는 사람 앞에서 괜스레 주눅이 들고 부러움과 열등감과 같은 못난 감정들이 들고는 했다. 그 물건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초라한 거라고 느꼈다. 그러나 나를 미운 오리 새끼라고 스스로 폄하하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면서 단순한 삶을 살게 되자 옷이나 물건에 대한 집착이 사라졌다. 그렇게 비워진 마음에 다시 채워진 것은 패션 센스, 패션을 향한 합리적인 가치관, 패션을 통한 인생철학이었다.      


   패션과 관련된 유튜브 채널 중에서 내가 수업을 듣듯이 접속을 하는 채널이 3개 있다. 기본적으로 물건을 구입하도록 현혹한다거나 비싼 명품을 샀다고 자랑하는 식이 아니라 패션에 대한 나름의 소신과 철학이 있는 유튜버들이다. 먼저 <보라 끌레르>라는 채널의 유튜버는 디자이너를 오랫동안 활동했던 경력이 있어서 전문적인 식견으로 패션에 대한 모든 것의 꿀 팁을 대방출한다. 귀여운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며 구독자들에게 하나라도 정보를 더 주려고 빠르게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진다. 듣고 있으면 기분까지 덩달아 밝아진다. 나는 주로 쇼핑을 할 때 H&M이나 자라, 앤 아더 스토리즈와 같은 SPA 브랜드를 이용하는 편인데 보라님이 세일 기간에 이곳의 옷들을 예리한 안목으로 가지고 와서 각각의 장단점을 분석해주고 스타일링 팁까지 자세히 안내해주니 참 감사하다. 덕분에 온라인 쇼핑몰에 가서 검색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녀를 통해 조금씩 패션 센스를 업그레이드해가는 중이다.     


  <Like 스위트 망고>라는 채널을 통해서는 유행에 상관없이 계절별 스타일링을 하는 방법이나 명품이 아닌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어서 가끔 접속하게 된다. 내가 지향하는 패션 가치관을 확고히 할 수 있고 조곤조곤 여성스럽고 우아한 말투까지 덤으로 익힐 수 있어서 지적이고 합리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싶은 여성이라면 나이 불문하고 들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채널이라 하겠다. 영상을 보고 나면 잠깐 동안이지만 그녀의 화법을 따라 하고 있는 우아한(?) 나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 매력적인 유튜버는 독일 항공인 루프트한자의 승무원으로 현재 독일인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다. 직장맘이면서도 틈틈이 패션 유튜버를 하고 있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모습에서 참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자 패션을 통해 인생의 철학까지 배울 수 있는 <밀라 논 나>이다. 사실 이 채널은 이태리에 사는 69세의 할머니 디자이너 유튜버가 삶의 지혜를 패션과 함께 버무려 편안하게 들려주는 고품격 인생학 강의 같다. 그녀의 옷과 액세서리 하나하나에는 설레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마치 패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오래된 옷을 수선해서 재탄생시키고 단추로 귀걸이를 만들며, 수십 년 된 옷을 여전히 멋지게 코디해서 입는 알뜰함이 묻어난 창의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이 채널의 영상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 결국 패션의 완성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치열하게 나다움을 펼치고 살며 주변을 둘러보고 사는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인생에 한 번은 밀라 논 나 할머니처럼 나다움을 입고 나의 인생과 연애하며 살아보자. 아름다움은 예쁜 옷으로 꽉 찬 옷장도 비싼 브랜드의 옷도 아닌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온다.  

   

   패션 자존심을 되찾자

  이제 나만의 캡슐 옷장을 만들 마음의 준비가 끝났는가? 옷장 안이 정리되고 평온해지면 진정 내면의 평화도 함께 찾아온다. 평평해진 가슴도 처진 엉덩이도 울퉁불퉁한 다리 곡선도 허리에 붙은 나잇살도 모두 포용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젊지 않기에 패션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말도 쑥 들어가게 된다. 다시 아름다움과 패션 자존심을 찾고 싶어 지는 것이다. 사실 아름다움은 내면의 문제를 치유하면서 마음속 구멍을 자기 사랑으로 채워나가는 데서 시작한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자신의 단점을 포용하고 오히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을 때 당당함이 나온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조앤 디디온은 “자존심은 내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자세에서 시작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 패션이라는 옷을 입히면 “패션 자존심은 캡슐 옷장에서 내 스타일을 책임지겠다는 자세에서 시작한다.”라고 재창조될 수 있다. 정말 그럴듯하지 않은가?   

 

  자, 아직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니까 굳이 패션 따위에는 관심을 두고 싶지 않다고 시니컬하게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러네이 엥겔른이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에서 한 다음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지닌 여성이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 여성들도 스스로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을 즐긴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닌지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이들은 화장이나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을 '아름다운 여성'의 역할이 아니라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들의 패션은 편안함과 자기표현을 위한 수단이다.      

  내가 ‘캡슐 옷장’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노는 것을 즐기는 이유를 이보다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잘 정리된 옷장 앞에서 내일 입을 옷을 준비하는 것은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나의 자존심과 자존감을 채우는 자기 돌봄의 시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를 긍정하고 가장 나다움을 표현하며 창조하는 시간! 모든 잡념을 버리고 내 몸을 돌보는 시간! 바로 명상의 시간과 다름없는 것이다. 어떤가? 당신도 나와 함께 캡슐 옷장 앞에서 5분간 패션 명상의 시간을 가져보지 않겠는가? 


  기미와 검버섯마저도 자유롭고 지적인 매력으로 승화시킨 그녀, 영화 <다가오는 것들> 속 이자벨 위페르의 꽃무늬 민소매 원피스 패션을 한 번 찾아보라. 나는 우리 중년 여성들이 그렇게 자신의 고유한 매력을 유지하며 나이 들어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며 자기표현에 두려움이 없는 당당함! 분명 그런 패션은 심플하고 잘 정돈된 옷장에서 탄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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