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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강차 Jul 25. 2020

108배 해볼까, 고소영도 했다는데

스트레스의 주범은 번뇌고 번뇌의 가장 큰 주범은 ‘내가 옳다’는 편견이다. 몸을 숙여 절을 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그러한 자신의 허물이 선명히 보인다. 맑아지기 때문이다.

                                                                              - 박원자의 「내 인생을 바꾼 108배」 中에서- 


  당신은 자신의 몸의 주인으로서 내 몸을 잘 사용하고 있는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채는가? 그러니까 자신의 몸과 친하게 지내는가? 내가 처음으로 108배를 100일간 꾸준히 하고 나서 바로 올라온 한 가지 깨달음은 이 세상에서 내가 믿을 사람은 온전히 나 자신뿐이고 그중에서도 ‘내 몸’이라는 것이었다. 내 마음에 있던 엄청난 쓰레기들이 빠져나간 뒤 가볍고 깨끗해진 마음에 들어온 빛이 몸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비추었다. 사실 엄마가 된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거의 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살지 못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직장에서 잠깐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배워보았지만 여러 사람 속에서 나의 부족한 면이 드러나고 남과 경쟁하는 식의 운동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을 많이 의식하던 시기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육아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시기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집에만 오면 무기력해져서 눕고만 싶고 집안일을 자꾸 미루게 되니 스트레스는 더 쌓여갔다. 내가 내 몸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내 몸에 나 자신이 끌려 다니는 꼴이었다. 그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들어온 지 1년이 넘는 시점에 108배라는 단어가 자꾸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마음 치유와 몸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부족한 워킹맘으로서는 아주 구미가 당겼다. 또한 어떤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참회하는 의미로써 하는 운동이라고 것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딱 100일만 해보자. 별 효과 없으면 또 다른 거 찾아보지 뭐.’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운명적으로 108배 절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예전에는 헬스든 요가든 배드민턴이든 우선 시작도 하기 전에 의복과 장비 구입에 온 에너지를 다 썼다. 그리고 막상 운동을 시작하면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심드렁해져서 수강료만 날리기 일쑤였다. 그런 나의 금사빠 성향을 알기에 이번에는 돈을 전혀 들이지 않고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최소한 작심삼일이 되더라도 한쪽 구석에 버려져 있는 장비와 운동복을 보며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끼고 ‘역시 나는 안 돼’라며 자기 비난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우선 돌돌 말린 채 오랫동안 몸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 파란색 요가매트부터 바닥에 쭉 펴놓았다. 그 위에 방석 2개를 나란히 놓은 뒤 큰 타월로 맨 위를 덮었다. 그럴싸한 절 방석이 완성되었다. 108배를 정확히 하는 방법은 유튜브 채널에 많이 나와 있는데 나는 〔채환 108배하는 법〕을 보고 기본적인 자세와 자세의 의미를 배웠다. 그냥 절만 하는 것보다 좋은 문구를 들으면서 하면 명상의 효과도 있을듯해서 〔108배 대 참회문〕을 들으면서 했다. 채환이라는 분이 본래 가수여서인지 목소리가 맑고 울림이 있어서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 108배는 마음 디톡스 운동 |


  처음에는 내가 참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구나, ‘내가 옳다’라는 자의식이 엄청 강했구나 하는 깊은 참회와 함께 매번 뜨거운 눈물이 났다. 특히,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 내편과 저편과 같은 이분법적인 분별심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깨달았다. 108개의 참회문 중에 짓지 않는 죄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자존심만 내세우려는듯한 살짝 쳐든 턱을 내리고 머리를 조아려 이마를 방석에 댈 때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입고 있던 겹겹의 철갑옷이 벗겨지고 점점 작아져서 본래의 나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와 함께 한 번도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 적이 없는 내 마음, 콘크리트처럼 단단했던 마음의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면서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 덩어리들이 눈물과 땀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가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인지 108배를 하고 나면 그렇게 몸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서 쓰레기를 가득 채운 1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빠져나간 기분이랄까. 


  직장에 다녀와서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일을 하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주말에는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도 에너지가 넘쳐났다. 남편 왈 그때 나에게서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고 했다. 전혀 틀린 말도 아니다. 나 자신조차도 애벌레처럼 꿈틀대며 침대에서 피곤해 죽겠어!라는 말을 연발하며 미루고 미루다가 마지못해 집안일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변하여 나비처럼 가볍게 여기저기로 날아다니며 뚝딱뚝딱 일을 해내는 내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108배는 내 마음속을 정화시키고 어리석은 생각들을 쓸어 담아 버리면서 결국에는 몸에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마음 디톡스 운동법이다.



      

  | 108배로 용서의 꽃을 피우다 |


  용서는 천천히 피어나는 꽃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108배는 내면이 맑아지면서 일상에서 통찰력이 좋아지게 되니 우연한 상황에서 찰나의 순간 용서라는 꽃을 피우게 도와주고 더불어 축복까지 선물할 수 있도록 도량을 넓혀준다. 딸아이가 치과 치료를 위해 이틀을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병원 보조침대에서 108배를 하고 난 뒤 오전 진료를 기다리려 책을 읽다가 옆 침대 환자분의 간병인이 틀어놓은 <포도밭 울 엄니>라는 인간극장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힘들게 일을 하고 나서 아들이 준 초코 음료 하나를 일당으로 받으며 “이거 하나면 족해”라고 환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시고 계셨다. 몸이 부서져라 농사일을 해오면서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꾀병 한 번 부리지 않으시며 담백하고 유쾌하게 살아온 분이셨다. 다시 한번 할머니들의 ‘just do it'정신을 떠올리며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그래, 시간이 없다는 둥, 피곤하다는 둥, 마음이 울적하다는 둥의 핑계는 집어 치고 오롯이 지금을 살아내자!      


  문득 20년 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시어머니로부터 쓰잘데기없이 딸년만 싸질러 놓는다며 ‘거시기를 꾀매버려야겠다’는 말씀을 들으셨다고 했다. 할머니는 딸 여섯을 낳으셨다고 한다. 딸을 낳을 때마다 들었던 그 치욕적인 말은 할머니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상처를 강제로 기억 저편 지하실에 가두어두고 베를 짜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탄생이 당신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 것일까? 살아생전에 손자들에게는 살갑다가도 유독 나만 보면 쌩하니 차갑고, 대면 대면하게 대하셨던 할머니. 나는 어린 나이에도 손주들을 대하는 할머니의 태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꼈다. 내가 5학년 때인가 할머니께서 조금씩 치매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은 할머니를 찾아다니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날도 어김없이 할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동네 어딘가에서 할머니를 찾았다. 그때 할머니가 뜬금없이 한복 속치마 속에서 눈깔사탕을 꺼내 주시며 “요거 아주 맛나다 함 먹어봐라”하시며 내게 주시는 거다. 그 사탕은 분명 오빠를 위한 것이었을 거다. 오랫동안 나는 한 번도 박하사탕이나 눈깔사탕 따위를 할머니에게서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탕은 좀 오래되었는지 먼지도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안 주시더니 이제 와서 왜 이렇게 더러운 사탕을 주시는 거야? 안 먹어 치사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사탕을 화단에 휙 던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할머니의 상처가 치매와 함께 잠시나마 지워져서 손녀인 내가 당신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저 예쁜 손주로 보인 것이다. 홧김에 버린 그 먼지 묻은 눈깔사탕은 사실 할머니의 순수한 사랑이었음에 틀림없다. 할머니는 5년 정도 치매를 앓으시다 내가 중2 때 돌아가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따뜻한 정을 느껴본 적도 별로 없거니와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감당해야 할 수많은 희생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자 엄마에게는 하루에도 열 번 이상 밥을 차리고 엎어진 밥상을 치우고, 몇 번씩 대소변을 치우고 몸을 씻기고 머리채를 잡아 뜯기며 욕을 듣는 것이 일상의 반복이었다. 집에서는 아무리 엄마가 깨끗이 쓸고 닦아도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그 5년 동안 한 번도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

      

  할머니에 대한 미움과 죄책감은 한 번은 집고 넘어가야 할 감정이었을까? 그날은 이상하게도 할머니가 이해되었다.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아팠다. 얼마나 잊고 싶은 기억이 많았으면 자신의 기억장치를 강제로 셧다운 시키셨을까. 더 이상 아픈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고통받고 싶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누구보다 ‘just do it'정신을 평생 실천하며 사시던 꼬장꼬장한 욕쟁이 우리 할머니, 그녀는 부지런하고 손끝이 야무져서 마을에서 가장 베를 곱게 짜셨던 베짜기의 달인이었단다. 그곳에서는 너덜너덜해진 당신의 마음을 그 야무진 손으로 촘촘히 꿰매고 홍역으로 저 세상에 먼저 보낸 딸들에게 맘껏 사랑을 표현하며 행복하게 사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은 나! |


  108배를 하면서 좋아진 것 중에 또 하나는 결정 장애가 완화되었다는 거다. 과거의 나는 ‘반품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옷이든 신발이든 어떤 물건이든 구입하고 나면 그 가게를 이틀 내에 다시 방문했다. 특히 충동구매를 한 물건은 대부분 집에 와서 보면 마음에 들지 않아 환불을 하거나 교환을 해야 했다. 사실 옷가게 직원에게 카드를 주며 결제를 할 때 《더 해빙》이라는 책에서 이야기했듯 해빙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로 기분이 불안하고 불편했었다. 이미 그 자리에서 내 마음속에서는 ‘이거 사려고 온 게 아닌데. 아, 생각지도 않은 지출인데’라며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죄송한데요, 다음에 살게요.’라는 그 두 마디를 입에서 떼지 못했다. 옷가게 직원들이 그럴 거면 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자신들의 귀한 시간을 빼앗았냐고 속으로 나를 비난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보다 더 신경 쓰였던 것은 바로 돈도 없는 주제에 왜 옷은 사러 온 거야라며 나를 무시할 것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복잡한 심정으로 계산대 앞에서 결재를 하고 나면 좀 전에 옷을 입어보며 행복했던 감정이며 소유에 대한 만족감은 싹 사라졌다. 충동구매에 대한 죄책감만 들고 ‘또 자기 절제를 못했구나. 나는 왜 맨 날 이 모양이지?’라며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참회문을 독송하며 무릎 꿇고 몸을 낮춰 절을 하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나임을 깨닫게 되자 내 결정에 대한 믿음과 책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비된 듯한 상태에 빠지면 모든 게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거창한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작게 시작하면 된다.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지 선택하라. 삶의 어떤 부분에 단호히 결정을 내리면 다른 부분에 대한 결단력도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 연구가 있다."

                                           -앨릭스 코브, 「우울할 땐 뇌과학」-     


  어느 날은 식당에서 처음 마음이 가는 대로 망설임 없이 왕 안심 돈가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너무도 맛있게 먹었다. ‘느끼함 대신 된장국의 깔끔함을 선택할 걸’이라는 식의 후회는 1도 없었다. 느끼함 자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정 느끼하면 단무지를 더 먹으면 그만이었다.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고 이후에 어떤 감정이 들던 책임을 지겠다는, 결정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내가 쥐고 행사한다고 생각하니 내 결정에 만족감이 더 높아졌다. 요즘은 옷을 거의 구입하지도 않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보면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3일 정도 묵힌다. 그 이후에 다시 들어가 보면 대부분 구입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면 바로 삭제해버린다.      


  책 구입도 마찬가지다. 무분별하게 책값에 돈을 마구 쓰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서점에서도 읽고 싶은 책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돈 뒤 소유하고 싶은 책들만 장바구니에서 골라 구매한다. 절제와 통제라는 양쪽의 고삐를 잡고 나의 말을 조정하니 말이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목표를 알고 가게 되었다. 이처럼 108배와 함께 나의 소비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주는 장바구니를 나는 ‘마시멜로 장바구니’라고 부른다. 지금 먹는 것을 참으면 나중에 두 개의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다는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착안한 별명으로 나의 인내력의 상승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나는 주로 밤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 전에 108배를 해왔다. 새벽에 하는 것도 좋았지만 참회문에 맞추어 나의 하루를 반성하고 좋았던 일이든 안 좋았던 일이든 다 비워내고 다시 새로운 나로 리셋되는 느낌이 참 좋았다. 저녁에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얼굴의 화장과 몸의 때을 클렌저로 씻어내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는 절운동을 통해 씻어냈다. 기억은  한계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오늘 경험한 것들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금세 지워버린다. 하지만 절운동을 하면서 지금에 집중하게 되면 의식이 맑아지면서 오늘 일어난 많은 일들을 팝업창을 띄우듯 소환할 수 있었다. 감사할 일들을 다시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집착이나 욕심을 다시 놓아버릴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미백 크림을 매일 바르고 팩을 한다고 해서 노란 피부가 하얗게 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맑아지지 않는가. 108배도 마찬가지로 매일 한다고 해서 상처가 없고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전혀 올라오지 않는 완전무결한 아이였을 때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마음이라는 그곳이 예전보다는 훨씬 맑아진다는 것, 가벼워진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았다고 느낀 날, 내가 상대방에게 의도하지 않았지만 말실수를 했다고 느낀 날,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몸까지 천근만근인 날은 무조건 108배를 했다. 딱 15분만 하고 나면 모든 잡념은 사라지고 오롯이 감사와 사랑만 남는다. 나를 작으면서도 크게,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게 해주는 단 15분의 마법 같은 시간. 분명 나는 불과 몇 시간 전의 나보다 그리고 어제의 나보다 몸도 마음도 더 아름다워져 있다. 108배 절운동 중독! 아, 영원히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 내 무릎이 허락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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