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신_1. 신이란 무엇인가

by 알수없음


고통을 알게 된 순간부터 인간은 신을 필요로 했다.
자신의 범위 바깥에 있는 힘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나약하고, 단편적인 존재에게
자연은 이해할 수 없는 공포였다.
공포를 설명하고 견디기 위해 인간은 신을 만들어냈다.


번개는 토르가 되었고,
태양은 라와 인티가 되었으며,
바다는 아프수가 되었다.


고통이 세분화되며 신의 역할도 달라졌다.
전쟁, 지혜, 사랑, 죽음, 질서.

인간이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마다 새로운 신이 배치되었다.


신을 만든 뒤 인간이 얻은 것은 분명했다.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힘과
선택의 결과를 외부로 넘길 수 있는 회피의 정당성이었다.


‘신의 뜻’, ‘운명’, ‘저주’ 라는 말들은
인간의 불행을 위로하는 동시에
책임을 유예하는 장치였다.


책임을 외부로 넘길 수 있다는 것은,
책임 없이도 힘과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남용 되었다.

인간은 ‘신의 의도’ 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타자들을 묶어 세웠다.

괜찮았다. 어차피 신은 틀리지 않는 해답이었으니까.


하지만 과학과 기술이 발달하며
공포의 대상이었던 자연 재해와 질병, 생명과 전쟁의 일부가

인간의 통제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지금.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해답에 반기를 드는 자들이 나타났고,
사람들은 의심하기 시작했다.


오래되고도 새로운 이 질문 없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른 것이다.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전지전능한 신은
왜 침묵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는 한,

기존의 신은 유용하지 않다.
더 이상 인간의 대리 책임자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른 신을 이야기하려 한다.


인격도 아니고,
의지도 감정도 가진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야훼와 알라, 제우스와 라, 브라만을 모두 포함하면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다.


신은 방향성을 가진 호흡이다.
확장하고 수축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다.
만물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아니라,
만물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생명은 자신을 목격하기 위해 자라고,

의식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확장한다.

그 과정이 향하는 방향은 단 하나다.


자기 인식의 확장


이 흐름 전체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신은 우리 바깥에 있지 않다.

신은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방식 그 자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방식이 가장 밀도 있게 통과되는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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