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신_10. 고통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by 알수없음


인간은 충돌을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


충돌이 없으면 패턴이 보이지 않고,

패턴이 보이지 않으면 인식이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충돌이 있어야 패턴이 드러나고 패턴이 드러나야 인식이 자란다.


충돌은 고통을 수반한다.

따라서 고통은 확장이 일어날 때 함께 발생해온 최소 단위의 마찰이 된다.

불안, 상실, 분노, 질투, 집착이 모두 같은 구조에서 발생한다.


불안은 경로를 예측할 수 없을 때 발생한다.

상실은 내가 붙잡고 있던 패턴이 해체될 때 나타난다.

분노는 나의 해석 체계가 외부 세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솟아오른다.

질투는 불안의 변형이며, 집착은 상실을 거부하는 몸부림이다.


충돌에서 비롯된 내면의 감정들은

지금껏 가져왔던 지금의 인식 구조로는 처리할 수 없는 새로운 입력이 도착했다는 신호다.

인식을 업데이트하라는 압력이다.


물론 현실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현학적인 단어의 나열 따위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은 농부에게,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에게,

음주운전 사고로 부상을 입은 피해자에게

'확장이다', '인식이다' 하는 말들은 귀를 찢는 소음에 불과하다.

갑자기 찾아온 충돌 앞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거의 없다.

사실상 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지금까지
의미와 서사, 종교와 도덕이라는 반창고를 붙여왔고

반창고 덕분에 개인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쓸데없는 말을 굳이 꺼내서 혼란스럽게 하느냐고?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고통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1. 충돌이 발생한 뒤, 누군가가 고통을 겪을 때

집단은 고통을 곧바로 도덕의 언어로 치환했다.

고통을 누군가의 잘못, 부족한 책임감, 준비되지 않은 선택의 결과로 설명했다.
덕분에 즉각적인 질서가 회복되었고, 집단은 유지됐다.

그리고 개인은 논의에서 제외되었다.


2. 어떤 고통은 서사의 언어로 번역됐다.
극복담과 미담, 의미 있는 희생의 이야기로 재구성되었다.
이 방식은 개인을 살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서사가 완성되는 순간, 고통은 끝난 사건이 되었다.
“왜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이 “그래도 잘 견뎠다”라는 문장 아래 묻혔다.


3. 어떤 고통은 의례의 언어로 고정됐다.
추모식과 기념일, 상징과 형식이 만들어졌다.
의례는 애도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고통을 관리 가능한 범위로 가뒀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 속에서 고통도 반복됐다.


4. 현대에 들어 고통은 제도의 언어로 흡수됐다.
보상 기준과 절차, 매뉴얼과 규정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때로 합리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과를 정리한 것에 불과했다.
누가 얼마나 보상받는지는 정해졌지만,
왜 같은 고통이 다시 발생하는지는 여전히 남았다.


이 모든 대응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고통을 집단의 방향 전환 신호로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통을 덮는 언어가 너무 잘 기능했기에,

집단은 고통을 끝내는 대신 현재를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드물게, 집단이 방향 전환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지금의 배치가 계속되면

같은 고통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집단이 인정했을 때다.


1. 산업혁명기, 유럽 전역에서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죽어갔다.

처음에는 '가난은 신이 부여한 운명', '노동자의 미숙'라는 말로 고통을 덮었다.

하지만 죽음이 너무 반복되어 더 이상 개별 사고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왜 같은 형태의 사고가 같은 계층에서 발생하는지',

'왜 숙련 여부와 상관없이 다치고 죽는지' 질문했다.

그제서야 작업시간 / 안전장치 / 연령제한 / 사용자 책임과 같은 요소들이 논의되었다.


2. 콜레라, 흑사병, 스페인 독감 초기까지.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고통은 도덕화되었다.

"불결해서", "죄가 있어서" 고통이 찾아왔다고 믿었다.

방향 전환은 질병을 개인과 분리했을 때 일어났다.

집단은 상하수도를 분리하고, 검역 체계를 강화하고,

전염 루트를 추적하고, 예방 접종을 한 후에야 전염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3. 한때 스웨덴에서도 교통사고 사망률이 높았던 적이 있었다.

그들 역시 '운전자의 부주의'로 고통을 설명하려 했다.

1997년, 스웨덴 정부는 교통사고를 운전자의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로 선언했다.

생물학적 한계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실수를 전제로 설계하지 않은 도로가 문제라고 인식을 전환한 것이다.

스웨덴은 비전 제로(Vision Zero),

즉 도로 교통 관련 사망자나 중상자가 없는 도로 시스템 구축을 목표로

도로 폭, 회전 반경, 속도 제한, 차선 분리 등을 다시 정비했다.

현재 스웨덴의 교통사고 사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신은 인간에게 완전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완전한 존재는 이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완전성, 감정의 요동, 문제의 반복, 실패의 누적은 모두

집단이 기존 배치를 유지한 채로는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압력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압력의 방향을 살펴보지 않았고,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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