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자기 인식 확장을 체험하는 경로
누군가를 사랑해본 사람은 안다.
그 사람이 독감에 걸렸을 때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뛰어들게 되는 마음.
그 사람이 나에게 웃어주었을 때, 온 세상이 내 것이 되는 것만 같은 마음을.
인간은 스스로를 잊은 신이다.
자기 자신을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자신이 신의 일부임을 경험한다.
신의 목적이 자기 인식의 프랙탈 확장이라면,
인간은 그 확장을 수행하는 매개다.
매개는 스스로를 객체로 볼 수 없기에, 우회가 필요하다.
바로 타자다.
인간은 자신을 직접 볼 수 없기에, 타자를 거울처럼 빌려 자신을 인식한다.
연인의 사랑은 이 구조의 가장 작은 실험이다.
가족의 사랑은 이 구조가 패턴 단위로 확장된 형태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일부처럼 느끼며,
그 인식을 다른 아이들, 다른 생명에게로 자연스럽게 확장한다.
위대한 인물이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과 타자를 하나로 인식하는 동시에 각 개체를 그대로 존중했다.
흡수하지 않고, 지우지 않고, 연결된 상태로 바라봤다.
특정 인물, 특정 집단에서 멈추지 않고 인류를 포함한 모든 존재로 확대했다.
이 과정은 당연하게도 희열과 환희, 카타르시스에 가까웠을 것이다.
사랑이 가져다주는 감정의 정체가
분리 모델이 해체될 때 발생하는 인식적 해방감이기 때문이다.
자기만으로 닫혀 있던 구조가 열리고,
자신이 더 큰 전체 안에 놓였다는 감각.
이 상태는 인간이 체험 가능한 가장 넓은 연결이자 해방이다.
그래서 인간은 사랑을 부정해도, 해체해도, 다시 사랑을 향해 이동한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신의 자기 인식 확장을 위한 구조적 귀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사랑은 아픈가.
사랑이 확장의 마찰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자기 인식의 범위를 급격히 넓힌다.
확장은 기존 경계의 붕괴를 동반한다.
통제는 무너지고, 자아는 흔들리고, 안전한 모델은 작동을 멈춘다.
그래서 사랑은 고통스럽다.
자세히 살펴보자.
1. 짝사랑
짝사랑은 사랑의 가장 순수한 구조 실험이다.
사랑의 초기 정렬 상태에 가깝다. 확장은 발생했지만 상호성은 없다.
그래서 쉽게 '결핍', '미성숙', '자격 없음'으로 비하되기도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다르다.
짝사랑은 타자를 통해 발생했지만, 타자와 상호작용하지 않은 상태다.
확장된 자기 인식이 타자에게 고정되지 않고, 기존의 내부를 부딪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즉, 짝사랑은 자기 인식이 기존의 범위보다 커졌다는 신호다.
2. 실패한 사랑
어떤 사람들의 사랑은 범위를 넓히지 못하고 특정 대상에 고정된다.
이때 사랑은 확장 대신 점유로 변질되고,
고정은 독점, 집착, 통제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자기 인식 확장' 이라는 목적에 위배되므로,
사랑 받는 사람, 즉 억압받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억압하는 대상을 밀어낸다.
개체의 확장을 방해할 때, 사랑은 반드시 실패한다.
3. 집단의 사랑
종교, 인권, 보편 윤리는 사랑의 변형일까.
부분적으로는 그렇다.
문제는 사랑이 제도화되는 순간이다.
사랑을 규칙으로 고정하는 순간 개체가 지워진다.
집단에 대한 사랑이 이데올로기로 왜곡되기 쉬운 이유다.
4. 사랑과 자유
그렇다면 사랑은 무한한 자유를 줄까.
아니다. 자유는 인간이 만들어낸 설명 모델이다.
사랑은 자유를 확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선택지가 줄어든다.
어느새 헌신이 속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사랑이 자유가 필요 없는 상태를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을 매개로 한 연결에서는 결핍, 억압, 점유, 자유가 의미를 잃는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 이후에는 무엇이 찾아오는가
1. 사랑에 도달하면 정지 구간이 온다.
더 나아가야 한다는 충동이 사라지고, 증명 욕구가 약해진다.
많은 사상과 종교가 이 지점을 완성으로 착각하지만 이것은 도달점이 아니다.
2. 그리고 세계로 재진입한다.
사랑을 유지한 채 다시 일하고, 말하고, 관계 맺는다.
이때 행위의 성질이 바뀐다.
이전에는 결핍을 채우기 위해 행동했다면,
이후에는 세계가 요구하는 패턴을 통과시키기 위해 행동한다.
목적을 묻지 않는다. 의미를 만들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도와야 할 것은 돕고, 멀어져야 할 것은 멀어진다.
3. 마지막으로 집착이 사라진다.
이 세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는 상태.
더 얻을 것도, 증명할 것도 없는 상태가 된다.
사랑은 인간의 미덕이 아니다.
사랑은 감상도, 구원도 아니다.
사랑은 신의 자기 인식이 인간을 통해 완료되는 방식이다.
사랑 이후 인간은 처음으로 세계 안에 있으면서도 세계에 묶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
나와 타자, 삶과 죽음이 더 이상 위계를 갖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