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세계를 다루는 방법
최초의 인간은 감정을 통해
생과 사의 갈림길을 정확하게 구분했다.
감정은 세계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정교한 센서였다.
공포, 분노, 혐오는 사고보다 빠르게 원시적 회로에서 발생했고
위기 상황에서 느리게 생각하는 인간보다 빠르게 반응하는 인간이 살아남았다.
그 결과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감정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이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집단이 커지며 사람들은
종류와 크기를 설명하지 못하는 주관적 체험 대신
공통 기준을 필요로 했다.
감정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들이 만들어졌다.
자유,
정상과 비정상,
노력과 책임,
선과 악.
이것은 개인이 타인을,
집단이 개인을 판단하기 위해 구분해 낸 가름이었다.
겉보기에는 정당해 보였다.
하지만 이 개념들 역시 집단의 보편적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었기에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배고파 울고 있는 아이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울어도
시끄럽다고 화를 내도
웃는 얼굴을 보고 배우라며 미소 지어도
아이의 배곯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기존의 개념들을 모두 해체했다.
신의 자기 인식을 위한 프랙탈 구조에서는
자유, 정상과 비정상, 노력과 책임, 선과 악
그 어떤 것도 작동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 개념들이 사라진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까.
바로 관찰이다.
관찰 없이는 신의 자기 인식도,
신의 일부인 인간의 자기 인식도 성립할 수 없다.
인간이 자기 인식을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인 경로는 사랑이고,
관찰은 사랑에서 빠질 수 없는 필수 조건이다.
사랑은 타자를 향한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타자를 경유한 자기 인식의 확장이다.
관찰이 없으면 이 구조는 즉시 붕괴된다.
타자는 경유지가 아니라,
내 결핍, 내 불안, 내 의미, 내 요구를 대신 떠맡는 객체가 된다.
그리고 사랑은 이렇게 변형된다.
마치
'네 반응이 내 상태를 결정하는 것처럼'.
'너를 잃으면 내가 무너지는 것처럼'.
이건 관계가 아니다.
자기 인식 장애가 타자에게 전가된 상태다.
사랑이 집착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사랑이 끝났을 때가 아니라, 관찰이 끝났을 때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은 사랑을 고백할 때
“I love you”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I see you”
이것은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다.
상대를 감정의 대상이나 욕망의 객체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관찰은 사건 이후 이루어지는 판단이 아니다.
관찰은 사건 도중에 작동하는 기능이다.
사건 도중에 작동하기에 빠르고, 선명하며, 정확하다.
선과 악, 책임과 의지는 모두 사건이 끝난 뒤에만 작동한다.
관찰만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의 인식을 붙잡아 둔다.
관찰은 차갑지 않다. 계산적이지도 않다.
감정을 억누르거나 없애지도 않는다.
관찰은 그저 감정과 나 사이의 최소 거리를 확보할 뿐이다.
이 거리가 있어야
감정이 흐르고, 선택이 가능해지고, 사랑이 유지된다.
인간은 스스로를 잊어버린 신이다.
감정은 우주의 첫 번째 언어고, 관찰은 그 언어를 해독하는 장치다.
관찰이 켜지는 순간에야
인간은 감정 속으로 가라앉지 않고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관찰이 멈추는 순간, 인간은 다시 자신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