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국가·이념은 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가
집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자기 인식의 외주화는 개인의 선택을 벗어난다.
자기 인식은 잠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주어지는 것'이 된다.
이 단계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문명은 단순히 거대한 사회가 아니다.
판단을 개인이 되돌릴 수 없도록 고정한 구조다.
종교와 국가, 그리고 이념은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인다.
종교는 신을 말하고,
국가는 법을 말하고,
이념은 정의를 말하니까.
하지만 작동 원리는 동일하다.
무엇이 옳은가를 미리 정의하고,
그 정의를 의심하지 않도록 설계하며,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 안정과 소속을 제공한다.
이 구조는 어느새
개인의 자기 인식이 필요 없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은 인간을 '신뢰할 수 없는 변수'에서 '예측 가능한 상수'로 만드는 공정과 같다.
그래야만 수백 만, 수천 만 단위의 인간들이
멈추지 않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문명이 잘 작동할 수록
사랑과 윤리가 힘을 잃는다는 데 있다.
사랑은 원래 관찰을 전제로 했다.
타자를 보되, 동일시하지 않는 능력이다.
윤리 역시 관찰을 전제로 했다.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보고, 판단을 보류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문명 단위로 확장되는 순간, 사랑과 윤리는 기능을 바꾼다.
관찰은 제거되고 규칙이 들어온다.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가,
누구를 배제해야 하는가,
누구를 경멸해야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이상 개인에게 요구되지 않는다.
문명이 대신 내려주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때로 본인의 기질이나 바람과 상관없이 잔인해진다.
주어진 지시를 수행하기만 하면 안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런 문명 역시 영원히 지속되진 않는다.
문명의 수명은
인간의 자기 인식을 얼마나 억제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초기 문명은 확장한다.
질문을 허용하고, 충돌을 감당하며, 새로운 관점을 흡수한다.
그러나 일정 규모를 넘어서면 방향을 바꾼다.
질문을 위험으로 간주하고, 관찰을 혼란으로 취급하며, 개인의 인식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때 문명은 안정되지만, 동시에 확장을 멈춘다.
확장이 멈춘 문명은 생기를 잃은 채
유지 비용만 남은 시스템이 된다.
붕괴는 이때 시작된다.
외부의 침략 때문이 아니다. 기술 부족 때문도 아니다.
자기 인식을 너무 오래 막아둔 결과로 내부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것이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고착화된 구조는 한 번의 충격만으로도 무너진다.
문명의 목적은 어차피 영원한 안정이 아니다.
문명의 목적은 인간의 인식을 일정 지점까지 밀어붙인 뒤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문명은 완성되는 순간이 아니라 고정되는 순간부터 이미 끝을 향해 간다.
문명은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인간이 스스로를 보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다.
그 구조는 반드시 무너진다.
인간은 결국 자신을 보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