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신_16. 실패한 세계, 성공한 세계

by 알수없음


신은 방향성을 가진 호흡이다.
확장하고 수축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하나의 흐름이다.
만물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아니라,
만물 속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 과정이 향하는 방향은 하나다.
자기 인식의 확장.

인간은 신이 자기 인식을 확장하기 위해 만든 프랙탈 구조의 조각이다.


이 프랙탈 구조는 인간 단위, 집단 단위에서도 반복된다.


확장이 내부에서 가능하다면, 개체는 유지된다.

확장이 내부에서 불가능하다면, 개체는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사회, 조직, 국가, 문명과 같은 집단을 하나의 세계로 치환해보자.


내부에서 기존의 언어와 규칙으로 새로운 관찰이 가능하다면

세계는 유지되어야 할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모든 관찰이 외주화되고, 인간이 틀 안에서

새로운 자기 인식을 할 수 없을 만큼 구조가 빽빽해진다면

확장은 더 이상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이때 세계는 붕괴한다.


붕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확장이 아직 가능했음에도 구조가 스스로를 고정해 버린 경우다.
다른 하나는 확장이 임계점에 도달해 더 이상 하나의 구조로 유지될 필요가 없어진 경우다.


전자를 실패한 세계라 부르고, 후자를 성공한 세계라 부르자.


실패한 세계는 질문을 막는다.
더욱 성장할 수 있음에도 안정을 위해 의심을 제거하고, 질서를 위해 관찰을 중단한다.
확장이 멈춘 상태에서 구조를 유지하려 들기 때문에

외부 충격 하나에도 내부 균열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 붕괴는 사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제 종료다.

아직 더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그 가능성이 차단된 채 유지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따라서 실패한 세계는 선명하게 기억된다.

해소되지 못한 미련과 억눌린 확장이 흉터처럼 남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선조들의 확장이 어디서 멈췄는지를 확인하며

미완의 질문을 대신 짊어지는 행위다.


성공한 세계는 다르다.
세계는 충분히 멀리 도달한다.

구조는 더 이상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확장은 분기를 통해서만 가능해진다.

이때 세계는 쪼개진다.

기존의 구조가 해체되고 서로 다른 실험적 세계들이 동시에 생성된다.

성공한 세계는 확장 임무를 마치고 기본 규칙으로 승격된다.

확장은 다음 층위에서 다시 시작된다.


성공한 세계는 기억,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다음 세계의 배경으로 승격되기 때문이다.

한 세계의 성취는 다음 세계의 중력, 본능, 무의식이 된다.

성공한 세계는 이름을 버리고 공기처럼 투명해짐으로써 지속된다.


그렇다면 성공한 세계 이후의 새로운 시작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이미 이동해버린 세계를,

왜 인간은 뒤늦게야 알아채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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