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뒤늦게 이해하는가
우리는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Q.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비트코인 풀매수 ㄱㄱ
- 그 또는 그녀를 놓치지 않을 텐데
- 퇴사... 해지마... 해지마... 젭...알......
농담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은
현재의 결과,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후회가 겹쳐진 다른 경로 탐색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달랐을 텐데.”
그러나 이 가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건 속에 있을 때 인간은 관찰자가 아닌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주체는 선택하고, 반응하고, 감정에 휘말린다.
미로 속에 갇혀 벽을 더듬는 자에게 출구의 개수를 고민할 여유는 없다.
애초에 출구가 존재하는지, 미로의 전체 형상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건이 일어날 당시
인간이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경로는 하나로 수렴한다.
최소 저항값.
내가 가진 기질, 내가 처한 환경, 내가 견딜 수 있는 감정의 한계선이 만나는
단 하나의 지점.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낙하에 가깝다.
출구의 개수를 알 수 있는 건 출구에서 벗어난 이후다.
미로는 출구에서 빠져나온 후에야 형태를 드러내고,
인간은 사건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사건을 조망한다.
사건에서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경로들이 가시화되고,
인간은 선택하지 않은 경로를 시뮬레이션한다.
후회는 시간이 지난 뒤 드러난 다른 경로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다.
이 모든 것은 사건이 매듭지어진 후에만 발생할 수 있다.
사랑이 끝난 뒤에 더 선명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중인 관계는 관찰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총합을 가늠할 뿐, 그 성격을 정의할 수 없다.
“그땐 사랑인 줄 몰랐다.”
이건 인간의 진솔한 상태 진술이다.
실제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정산은 관계가 닫힌 후에야 비로소 이뤄진다.
얼마나 기뻤는지, 슬펐는지, 황홀했는지, 화가 났는지.
이 모든 감정을 합산했을 때,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나의 인식 확장이 얼마나 아름답게 이뤄졌는지.
그렇다면 시간은 무엇이길래
이렇게 인간을 한 발자국 뒤로 밀어내는 걸까.
시간은 사건이 지나가는 독립적인 배경이 아니라,
인식이 정렬되는 순서다.
가정해보자.
만약 인간이 사건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였다면
후회도, 의미도, 사랑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은 실시간으로 소모되고 구조로 관찰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자기 인식 확장이라는 제 1규칙을 방해한다.
우주는 사건과 이해의 거리를 떨어뜨려놓기 위해 시간을 만들었다.
시간은 자기 인식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지연 장치인 셈이다.
실패한 세계의 종료와
성공한 세계의 분기 이후에야
인간은 기존 세계를 조망하고,
거기서부터 또 다른 확장을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이해한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지나간 세계에서만 자신을 본다.
이 모든 과정은 세계가 구조로 드러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