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프로젝트
이제 간략히 R&D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사례를 살펴본 후 2부에서 R&D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방법론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R&D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보다 훨씬 간단한 웨딩 프로젝트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간단하다고 했지만 결혼 프로젝트도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만약 본인이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웨딩 프로젝트를 어떻게 진행할지 생각해 봅시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하다간 결혼식 날짜를 맞추지 못하는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웨딩 프로젝트를 일 범위(work scope)별로 나누어 보면 예를 들어 예단, 결혼식, 신혼여행, 신혼집, 혼인신고 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각 일 범위는 개별 활동(activity)들로 나누어 일 처리가 가능합니다. 예단의 경우에는 예단 선정, 예단 구입, 양가 예단 교환 등으로, 결혼식의 경우에는 결혼식 일자 선정, 결혼식장 선정 및 계약, 청첩장 준비, 청첩장 배포, 주례 섭외, 사회자 섭외, 예복 계약, 예물반지 준비, 결혼식 하객 수 추산, 뷔페 계약, 결혼식 진행, 결혼식 및 뷔페 정산 등. 이 정도면 슬슬 골치가 아파오죠. 신혼여행은 여행지 선정, 여행사 계약, 여행 준비물, 웨딩카 준비, 신혼여행 진행 등으로, 신혼집은 아파트 선정, 아파트 전세 계약, 아파트 전세금 융자, 아파트 전세 잔금 지급, 혼수 장만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혼수 장만은 더 세부적으로 가전제품, 가구류, 침구류, 주방용품, 혼수 배치 및 집 정리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끝으로 혼인신고는 처부모님 인사, 시부모님 인사, 혼인신고 등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일들만 알아봤는데도 이렇게 복잡하고 챙겨할 일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구성된 일들도 그냥 건건이 처리하는 방식으로 하다 보면 각 일들이 뒤죽박죽 되기 일쑤고 일정이 미뤄져 조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전혀 싸우지 않던 커플도 결혼을 계획하고 나면 싸우게 되는 이유가 결혼식까지 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골치 아픈 일들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 범위와 각 활동들을 정했다면 각 일 범위와 활동들 간의 선후행 관계를 살펴보아야 하고, 각 활동들의 시작 일정과 기간을 정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아래와 같은 일정표의 작성이 가능하게 됩니다.
위와 같이 일의 범위를 나누고 일정표를 계획한 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의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본 실행 계획도 세우지 않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당연히 이와 같은 실행 계획을 세워도 그 계획은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뭐 하러 계획을 세우냐는 질문을 합니다. 계획 세우는 시간에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느냐며. 그러나 변경되는 계획이기에 계획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계속 한 방향을 가리키지 않고 떨린다고 나침반을 버린다면 길을 찾기란 요원해질 것입니다. 기본 실행 계획은 프로젝트 수행과 변경 관리의 기준선(baseline)이 됩니다. 기준선이 있어야 자신이 어디쯤 가고 있으며, 뭘 놓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고, 어떻게 변경을 하면 되는지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웨딩 프로젝트도 이렇게 복잡한데 불확실성이 아주 높은 R&D 프로젝트의 경우 말해 뭐 하겠습니까.
Research Project
Research형 프로젝트는 새로운 소재를 찾거나 요소 기술을 도출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답을 찾아나가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나노 구조의 다공성 미디어(nano-structured porous media)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나노(nano)란 10억 분의 1 즉 10-9를 의미하며, 1 나노미터(nm)는 머리카락 두께(약 0.1 mm)의 10만 분의 1에 해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필터 소재는 마이크로 구조의 다공성 미디어(micro-structured porous media)로 머리카락 두께의 100분의 1 이상의 직경을 가진 섬유들이 불규칙적으로 얼키설키 쌓여 이루어져 있습니다. 쌓인 섬유의 수가 많을수록 필터의 여과효율은 증가하지만 반면에 필터를 통해 공기가 투과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미세먼지를 잘 잡는 두꺼운 마스크를 쓸 경우 숨 쉬기가 답답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기 투과도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여과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마이크로 섬유 필터 위에 나노 섬유를 올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아이디어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연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필터의 마이크로 섬유들 사이에 거미줄을 치듯 나노 섬유를 성장시켜 걸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마이크로 필터 표면 위에 나노입자들이 체인(chain) 모양으로 서로 응집되어 쌓이게 하여 스펀지와 같은 나노 기공 구조를 형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두 방향의 연구는 아래와 같은 일 범위로 세분화되어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나노섬유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탄화수소 가스를 이용하여 탄소나노섬유(CNT, carbon nano-tube)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화학기상증착(chemical vapor deposition) 장치를 설계 제작하였으며, 마이크로 섬유 표면 위에서 나노섬유가 자랄 수 있도록 마이크로 섬유 위에 씨앗 역할을 할 수 있는 나노 크기의 촉매입자를 올리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그 씨앗을 타고 나노섬유가 자라게 하여 마이크로 섬유들 사이에 나노섬유가 거미줄을 치듯 걸쳐 자라게 하여 마이크로 구조와 나노 구조가 조합된 새로운 구조의 필터를 개발한 결과, 투과도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여과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동시에 마이크로 필터 표면상에 나노입자들로 나노 기공 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먼저 나노입자 발생장치를 구성하였습니다. 나노입자는 레이저 빔을 원하는 시편 표면에 주사하여 그 표면에서 분자들이 증발한 후 떨어져 나와 다시 응축되는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질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아나갔습니다. 나노입자가 발생되는 방법을 도출한 후 발생된 나노입자들이 서로 응집되어 구형을 이루기보다는 기다란 체인 모양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체인 모양의 나노입자 응집체가 마이크로 필터 표면 위에 쌓여 나노 기공 구조를 형성함으로써 최적의 나노필터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도출하였습니다.
이상과 같이 research형 프로젝트도 도출하고자 하는 최종 소재나 요소기술을 먼저 정한 후 이를 이루기 위한 세부 일 범위를 구성하여 체계적으로 나누어 진행함으로써 원하는 결과를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Development Project
Development형 프로젝트는 새로운 소재나 다양한 요소 기술들을 서로 조합하여 특정한 제품(product)을 완성해 나가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부탄가스를 이용하여 실시간 발전을 할 수 있는 휴대용 연료전지 발전기를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해당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먼저 요소 부분품들을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전기화학적으로 전기를 생성할 수 있는 연료전지 스택(stack), 그 스택으로 부탄가스가 깨져 수소와 일산화탄소 가스로 공급되게 할 수 있는 가스 개질기(reformer), 스택으로부터 배출되는 미반응 가스를 태울 수 있는 후단 연소기(after burner), 그 연소기에서 탄 가스 열을 회수할 수 있는 열교환기(heat exchanger)가 가장 핵심 부분품으로, 그 이외에 이들을 감쌀 수 있는 단열 케이스, 공기를 공급하기 위한 송풍기(blower), 부탄 가스통, 유량제어기, 스택으로부터 생성된 직류전원을 사용가능한 교류전원으로 변환할 수 있는 전력변환기(power converter), 전환된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가 주변 부분품으로 개발되거나 조달되는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부분품들을 서로 연결하여 유기적으로 운전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함으로써 최종의 발전기 제품이 개발 완성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최종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각 세부 요소부분품 개발로 일 범위를 나눈 후, 각 세부 요소부분품을 개발하기 위한 세부 활동들로 나누고 그 활동들의 선후행 관계를 고려하고 세부 일정들을 정함으로써 아래와 같은 WBS와 일정표를 완성하여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수행해 나갔습니다. 만약 이렇게 복잡한 프로젝트를 이와 같은 체계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지 않고 수행했더라면 아마도 최종 제품을 개발 완성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