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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Sep 16. 2023

창작은 너를 외롭게 할 거야.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 이연

 「그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재능이라는 건, 시키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재미를 느낀다면 지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남들은 금방 지쳐서 관둘 테니 누구보다 잘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그림을 엄청 잘 그리면 그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는 맞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만 그림을 그렇게 재미있어하지 않는 친구들도 종종 봤다. 그런 애들은 하나같이 대학을 졸업하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그러니 재능에 너무 목을 맬 필요가 없다.」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 이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솔직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거짓말을 지독스레 못하고, 들키는 것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니 거짓말을 하느니 솔직하게 말하자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너 진짜 솔직하다."라는 말에 자신감을 가졌던 순간도 있지만 그것은 찰나의 시기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솔직함과 멀어졌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땐 알지 못했다. 솔직함은 나의 무기였고, 때로는 나의 정체성이기도 했다. 이건 맞다, 이건 아니다 등의 의견을 내뱉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면서 이런 솔직함은 좋은 결과보다는 나쁜 결과를 초래할 때가 많았다. 조교로 근무할 적에 학과에 충원율이 떨어진다며 긴급회의가 열린 적이 있었는데, 그 사이에는 조교인 나도 끼여 있었다. 학과 이름을 바꾼다느니, 수업 개편이 필요하니, 현장 학습 같은 것을 더 늘려야 하니 등등의 이야기가 펼쳐졌고, 결론은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것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교수님은 나에게 물었다. 맹조교의 생각은 어때? 아마 바뀌게 될 학과 이름이 괜찮냐는 뜻이었겠지만, 나는 학과 이름을 바꾼다고 충원율이 올라가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내가 졸업했던 국어국문과는 문예창작과로 바뀌었지만, 이전보다 드라마틱한 결과를 내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로 다시 이름을 바꿨지만, 그나마 남아 있던 정체성마저 버린 느낌이었다. 이름만 점점 길어질 뿐, 배우는 내용은 비슷했다. 즉 내가 생각하기에 이름을 바꿀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이 학과를 다닐만한 메리트를 강조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자격증이든 대외활동이든 말이다. 


 이 말을 하고 나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몇몇의 교수님들은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쉬었고, 나머지 교수님들은 의견은 고마운데 학과 이름이 괜찮냐는 것이었냐며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 순간 물밀듯 밀려오고 있던 생각의 샘을 막아버렸다. 이곳에서는 의견을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의견에 동의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 후로 교수님들이 내는 의견에 대부분 좋다는 말로 답변했고, 솔직함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의 샘의 크기는 한정적이었고, 물밀듯 밀려오는 생각들은 금방이라도 차고 넘칠 것처럼 넘실거렸다. 그때부터 퇴근한 후에는 사무실에 불을 끄고, 문을 잠근 채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갇혀 있던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가며 하얀 종이 위에 글자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썼던 소설 속에 내 캐릭터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솔직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불의에 대항하고, 사회에 대항하고,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항했다. 그 시절에 썼던 소설들을 읽어보면 뭐가 그리 억울했고, 서러웠던 게 많았는지 캐릭터들의 대사가 모두 호소에 가깝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결말은 매번 밝게 끝나 있었다. 주인공의 마음에서 답답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혹은 누군가를 용서하기도 하는. 그런 뻔한 결말들 말이다.


 인간은 고독한 생물이다. 혼자서 태어나서 결국 혼자서 돌아가는. 가끔은 이 고독함이 나를 낭떠러지로 몰아세울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살기 위해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친구들을 만났고, 산책을 하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낭떠러지로 몰아세웠던 고독과 외로움은 자취를 감췄다. 모순되게도 인간을 낭떠러지로 몰아가는 것도 고독이지만, 그 낭떠러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고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은 너를 외롭게 할 거야. 그런데 사실은 모든 일이 그렇단다. 외로움을 잘 견딜 수 있게 랜턴을 켜고, 손난로를 챙기고, 친구 굴에도 놀러 가고 네 굴에도 초대하렴.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러라고 외로움이 있는 거야. 네가 깊어지라고,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야."」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 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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