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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Sep 07. 2023

그렇게 우리는 공평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초보 노인입니다」- 김순옥

「그렇게 우리는 공평하게 늙어가고 있었다. 저 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산에서도.」

초보노인입니다 - 김순옥





 엄마의 오랜 취미는 수사물을 보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엔 영화채널에서 방영해 주는 NCIS, 본즈, CIA를 즐겨보시곤 했고, 영화관에서는 미션 임파서블이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액션물을 보는 것을 좋아하셨다. 나를 키우면서 TV에서 만화만 주구장창 틀어댈 때에는 투니버스에서 방영하던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 같은 만화를 보며 범인이 누구인지에 관해서 진지하게 나와 토론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영화값은 비싸졌고, 현생에 치이면서 엄마의 영화관 가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어느샌가 드라마로 노선을 갈아타고, 주말 드라마나 평일 드라마를 몰두해서 보기 시작했다. OTT 서비스가 한창인 시절에 나는 넷플릭스와 왓챠를 구독하여 집에 있는 컴퓨터에 로그인을 해뒀고, 엄마에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렸다. 


 그 후로 엄마는 퇴근한 후나 휴일에는 컴퓨터 앞에 앉은 채로 넷플릭스를 켜두고 어떤 것을 봐야 하나 고민하는 취미가 생겨버렸다. 처음에는 놓친 드라마를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옛날 영화들을 정복하기 시작하시더니 언젠가부터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오징어게임이나 더 글로리는 물론이고 웬즈데이나 퀸스 갬빗까지.(내가 예시를 더 많이 들지 못하는 건 나보다 엄마가 더 많은 작품을 봤기 때문이다) 재밌는 걸 찾았다 싶으면 대략적인 줄거리와 함께 나에게 추천하는 것 또한 잊지 않으셨다.


 이런 와중에 엄마에게는 또 하나의 고민이 생겼는데, 나중에 은퇴를 하게 되면 뭘 하고, 뭘 먹고 사나였다. 엄마는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이 년 정도 일하면 퇴직해야 되는 나이가 되고, 퇴직 후의 삶보다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기에 먹고살 일은 물론이고, 무엇을 하며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글씨를 잘 쓰니 캘리그래피를 배워보라고 말도 해보고, 넷플릭스를 자주 보니 영화나 드라마 리뷰 같은 것을 적어보는 것은 어떠냐고 물었지만, 그런 쪽에는 큰 관심을 가지진 않으셨다. 최근에는 요가를 다니고, 민화를 배우고 싶다며 수강신청하듯 주민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가끔씩 거울을 보며 너무 늙었다고 자책하는 우리 엄마. 나에게는 항상 한결같고 밝고 예쁜 엄마인데, 거울에 비친 본인의 모습을 보는 그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사진을 찍고도 못 나왔다며 우울해하시고, 과거 사진들을 보며 그땐 좋았지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를 보면,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끔은 짠한 마음이 올라오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엄마가 동안이라도 노인이라는 길목에 서 있는 사람일 뿐이고, 나 역시 영원히 이십 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기에, 중년을 거치고 노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은 엄마와 나의 공통점일 것이다. 조카들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엄마는 어느샌가 할머니로 불리고 있었고, 이렇게나 젊은 엄마가 할머니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엄마는 당연한 일이라며 큰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했다.


 삶은 어쩌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늙어감을 알고 있음에도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작업임을 어렴풋이 느낀다. 인간에게 목숨은 단 하나뿐이어서, 미래는 막연해 보이고, 과거는 아쉬울 뿐이다. 늙어가는 것도, 노인이 되는 것도, 죽는 것도. 우리에겐 모두 처음 해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은 설레고, 가끔은 무서울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가끔 백발이 되어버린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언젠가 분가를 하게 되면 이 작은 집에 두 분만 남아 있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겠지. 같은 생각을 하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그리도 동시에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이렇게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모두 준비가 필요하다. 취직, 결혼, 이사에도 준비가 필요하듯이 우리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도 충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수십 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듣고 익히며 나 역시 살아가겠지. 그리고 언젠가 노인이 되었을 무렵엔, 스쳐 지나갔던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겠지.




 「결국 이렇게 사랑해, 그리워, 다시 만나라고 할 거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구나.」

초보노인입니다 - 김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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