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행복할 거야」 - 정켈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거야'라는 말이 무책임하게만 느껴지던 순간이 있었다. 힘들어하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의 내가 괜찮다는 걸 어떻게 그리 확신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 또한 나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사회와 학교는 별만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도 다양하고, 오랜 시간 해왔었고 학교 생활 또한 충실히 해왔기에 이 정도면 사회에 나가도 잘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오만한 생각을 가지며 살았다. 그러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자마자 맞이한 현실은 꽤나 차가웠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학생이란 신분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에게 편의를 주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책임에서 회피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어른대 어른으로 맞이한 세상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서 싫은 사람한테도 억지로 웃고 가끔은 아부도 떨어야 할 상황이 오고, 웃고 맞장구치며 이야기는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 놓아둔 대화를 꺼낼 타이밍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정말 잘 맞는 친구를 사귀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고, 이제는 정말 비즈니스 적인 관계만 남아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만 문제였는가, 일은 또 왜 이리 복잡하고 어려운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이것 밖에 못해?"
"아니 이렇게 안 봤는데……."
같은 실망 섞인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자존감은 점점 깎이다 못해 바닥을 쳤고, 자신감은 온데간데 사라진 채로 그 자리에는 질투와 분노만이 자리를 잡은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그 순간만 조금 나아질 뿐, 다음날 회사에 도착하면 똑같은 일들이 반복될 뿐이었다. 그렇게 가끔은 술로, 폭식으로, 때로는 잠으로 스트레스를 풀어가기 위해서 애쓰자, 내 몸보다 마음의 병이 조금씩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정말 친했던 친구 녀석은 내 하소연을 듣고 이렇게 말했었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이 녀석 내 얘기를 잘 듣긴 한 거야? 나는 지금 죽을 만큼 힘들다니까 기다려보라고?'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정말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일들은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일은 조금씩 익숙해져 갔고, 물어보는 것이 창피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되었고, 직장에서도 마음 맞는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이 동갑이나 한 두 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열몇 살 차이 나는 사람까지도 가능하다는 것.
「기다려온 그 순간에 도달한 지금,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흘러가기만 하는 것처럼 보이던 시간은
기쁜 모습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행복한 저 자신에게 저를 데려다주고 있었음을.
그 과정에서 다치지 않도록, 탈 나지 않도록,
겁내지 않고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잠잠하고도 다정하게 흘러가며 함께해주고 있었음을
행복을 향해가는 항해 중에 당신이 있는 것이라고,
그 행복을 곧 만나게 되리라고.
그리고 힘겨운 지금을 나에게 도 저런 순간이 있었구나, 하고
추억 속 풍경을 보듯 바라보게 될 거라고.」
나는 오늘 행복할 거야 - 정켈
스물일곱. 이십 대 후반을 바라보면서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생각도 들긴 하지만,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사회초년생으로 보일 나이. 이런 나에게도 가끔씩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학교 생활이 힘들고, 친구를 사귀기가 힘들고, 교수님이, 사장님이, 진상들이, 등등. 그런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그들에게 '시간이 모두 해결해 줄 거야'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과거에 이 말을 해줬던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불행을 잊기 위해서는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불행이 찾아왔을 땐, 그 불행에 맞서도 되지만, 도망가는 것 또한 틀린 선택이 아니라는 것. 직장을 다니면서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 나는 매번 마음속에서 저울을 꺼낸다. 직장을 다니면서 얻는 행복과 이곳을 떠났을 때 얻을 수 있는 행복을 계속 저울질하며 무엇이 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인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우리가 어떠한 결정을 내리던지 주변에서는 수많은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우려와 걱정이 담긴 소리부터 야유와 조롱이 담긴 소리까지. 그 소리에 전부 귀를 기울여버리면 결국 자신의 결정은 희미해지고 그들의 목소리만이 뚜렷해진다. 세차게 부는 바람 속에서 내 소신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거세게 불던 바람도 언젠가는 그칠 테니까. 결국엔 지나가버릴 테니까.
「날 둘러싼 모든 순간이 오롯이 나의 선택으로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은 더욱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누구도 날 대신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절로 따라오는 쓸쓸함을 선사하곤 한다. 우리는 서로 아무리 비슷해도 완전히 같을 수 없고, 서로가 완벽하게 타인일 수밖에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오늘 행복할 거야 - 정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