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욱 Jul 19. 2023

나는 멈춰 있지 않아. 그거면 된 거다.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제게도 바보 같은 시절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이 하나도 바보 같지 않더군요.」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대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에, 취직을 해야 한다는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있었다. 졸업까지 일 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러간 시간들이 나를 옥죄어 왔기 때문이었다. 후배들이 부러웠다. 나는 왜 신입생이 아니고, 나는 왜 이학년이 아니고, 나는 왜 삼 학년이 아닐까. 그래, 적어도 삼 학년이었다면, 남은 이 년동안 자격증도 따고, 대외활동도 하고 좀 더 천천히 취직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가지며 말이다. 그래봤자 23살.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음에도, 나는 내가 너무 늦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루하루가 점점 답답하게 느껴졌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느낌과 함께 가슴이 답답했고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인해서 복잡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이 길이 옳은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날에는 깊은 수령에 빠진 듯한 상실감에 하루 종일 허우적거렸다. 나는 마치 마음 가는 대로 그어놓은 선 같았다. 너무 중구난방으로 그어져서 어떻게 되돌릴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그림에 그어진 선. 지금까지 그어놓은 선은 아깝고, 그렇다고 그림을 찢어버리자니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딱 그런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잊기 위해서는 공부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그리고 이런 걱정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곧바로 집 근처에 있는 수영학원을 등록했다.


 여기서 엥? 갑자기 수영을?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 과 4학년들은 모두 이러한 걱정거리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해결책을 운동에서 찾는 유행이 불고 있었다. 어떤 형들은 헬스로, 다른 형들은 복싱으로 빠지고 있던 와중에 나에게도 두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오게 된다. 그러나 뭔가 헬스는 재미가 없어 보였고, 복싱은 위험해 보였다. 두 곳 모두를 거절하고 찾아보다가 알아낸 것이 바로 수영이었다. 


 물 위에 둥둥 뜬 채로 우아하게 수영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첫 수업부터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수영장을 처음 가서 배우는 것은 당연하게도 물에 뜨는 것이었다. 남자 선생님은 난간을 잡은 채로 물에 뜨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곧잘 하는데도 나는 그 제일 기초인 물에 뜨는 것이 죽어라 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매번 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며 힘을 빼라고 말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몸에 힘을 빼면 뭔가 한 없이 가라앉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코와 귀, 입으로 들어오는 물 때문에 죽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일었다. 고작 수심 1.5m. 발이 땅에 닿을 충분한 높이와 옆에는 선생님이 있었는데도 나는 도대체 뭐가 그리 두려웠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다른 사람들이 자유형에 익숙해질 때 즈음에도 나는 여전히 물에 뜨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그 주의 마지막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나는 물에 뜨지 못했다. 한심했다. 고작 이런 거 하나조차 못하는 나 자신이. 취직 준비도 못하고, 물에서 뜨는 것조차 못하면서, 걱정은 많고, 두려움도 많은 나 자신이 싫었다. 수영장을 나와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밥을 먹은 후에 침대에 걸터앉아서 울어버렸다. 남들이 다 하고 있는 것조차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과에서 친한 형이었던 J였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고, 나는 물에 뜨지 못해서 울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깔깔 웃으며 주말에 수영장을 같이 가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와 함께 도착한 수영장에서 그는 내가 물에 뜨는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네. 그냥 딱 한 번만 나 믿고 몸에 힘 풀어봐 봐. 빠질 것 같으면 내가 잡아줄게. 무조건."


 빠진다는 말조차 무색한 수심이었음에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흐읍 - 하고 숨을 참은 채 물속에 머리를 넣었다. 그리고 숨을 내뱉으며 조금씩 몸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다시 몸이 천천히 굳기 시작했고, 다리부터 물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배 쪽으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J가 가라앉고 있던 내 몸을 잡아준 것이었다. 더 이상 가라앉지 않는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몸은 천천히 물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물에 뜰 수 있었다. 


 다음 수영 시간이 되고, 나는 선생님께 다가가서 당당히 말했다. 


 "저 이제 물에 떠요." 


 사실 또 그렇게 생각만큼 완벽하게 물에 뜬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찌어찌 넘어가서 자유형을 배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 또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꼭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만이 사회에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하루 만에 물에 뜨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일주일이 걸려도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회라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심연으로 빠지고 있을 때, 나를 조금씩 끌어올려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 몸을 살포시 잡아주었던 J와 같은 사람들이 말이다. 




 「자주 우울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눈을 떠서 내 발장구를 쳐다본다. 잘 나아가고 있는지 헷갈릴 땐 푸른 타일을 얼마나 지났는지 헤아려본다. 나는 멈춰 있지 않아. 그거면 된 거다. 고독의 밑바닥을 똑바로 주시하고자 한다. 외로워지라고, 지루해지라고, 슬퍼지라고 내버려 둔다. 그러면 슬픔은 가라앉고 슬픔보다 가벼운 나는 곧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가만히 소리를 듣는다. 몸이 물을 가르는 소리. 이 모든게 없다면 숨소리만 남겠지. 나는 온전히 지금에 머문다.」

매일을 헤엄치는 법 - 이연


 

이전 13화 운전은 내게 거의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