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장류진
「운전은 내게 거의 유일한 실패의 경험이다.」
연수 - 장류진
대학교 사 학년 여름방학, 곧 취업전선에 나가야 한다는 불안감과,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아득함 속에서 방황하고 있던 나에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방학 때는 운전면허라도 좀 따라." 24살. 그때까지의 내 삶을 되돌아보면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열심히 살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삶이었다. 토익이나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다가도 시험을 한 두 번 보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포기하는 것을 반복하고, 등단을 목표로 소설을 쓰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투고를 할 곳도, 공모전에 제출할 곳도 찾아보지 않은 채 지내기 일쑤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 소설을 공유하고 피드백을 들으면서, 그냥 글을 쓰는 사람, 소설을 쓰는 사람, 책을 많이 읽는 사람 정도로 기억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나를 꾸준히 지켜보던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니 자격증이든 소설이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나? 끝맺음을 하는 거다. 끝맺음을. 뭘 하나 끝내야지 다음 걸 준비하던가 하지. 자격증도 그냥 좀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하고, 공부도 좀 하다가 안 되면 놓아버리고, 지금 니한테 필요한 건 당장 취직 뭐 이런 게 아니라 하나를 시작해서 끝맺음을 맺는 거다. 이번 방학에는 그러니까 운전면허를 함 따보자. 진짜 그거는 개나 소나 다 따는 거니까."
라는 말과 함께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해 주셨고, 나는 며칠 지나지 않아서 필기시험에 합격하게 된다.
필기시험 합격에 좋았던 기분도 잠시, 이제는 정말 실전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는 운전면허 시험이 개정되어서 어렵게 바뀌고, 강습료도 많이 올랐던 때여서, 단 시간에 무조건 합격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렇게 기능 시험 연수를 받게 되었고(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곧바로 합격될 줄만 알았다) 시험장에서 들어선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안전벨트를 매고 경사로에 진입하기 전에 나왔던 돌발까지 무사히 멈췄던 나는 깊은 안도감에 경사로 부분 때 3초 정지를 하지 않았고, 결과는 실격처리. 9시에 시작했던 시험이 고작 9시 2분에 그것도 실격처리로 끝이 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일단 그런 마음이 들었다. 며칠 있다가 다시 시험을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강제로) 내 마음을 다독이며 시험장을 벗어났다.
그렇게 두 번째 기능 시험 날. 안전벨트도 했고, 돌발도 무사히 마쳤고, 경사로에서 정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관문이었던 직각주차. 스무스하게 들어간 건 괜찮았는데, 후진과 엑셀을 헷갈리는 바람에 앞바퀴가 길 모서리게 끼여버린 것이다. 경로를 이탈하지 말라는 기계음이 들리고 시험점수가 점점 깎이기 시작하더니, 곧 불합격이라는 문구가 떠버렸다. 감독관이 달려와서 조수석에 타라는 말과 함께 두 번째 시험도 끝이 나버렸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분명 엄마가 개나 소나 다 따는 자격증 이랬는데. 나는 도대체 뭐지? 개랑 소만도 못한 인간일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세 번째 시험이 다가왔고, 그때는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젠장. 여기서 끝이 났어야만 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주행 시험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응어리졌던 내 감정은 주행 시험에 터지게 된다. 첫 번째 시험은 끝까지 다 달렸지만, 핸들 실력이 미숙하고 선 침범을 했다는 이유로 불합격 판정을 받아버렸고, 두 번째 시험에는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는 것을 보았으나 '이 정도면 그냥 지나가겠는데?'라는 마음으로 가속을 했다가 신호위반으로 실격처리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실력으로 떨어진 것도 아니고 실격처리라니. 그것도 신호 위반으로…….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나의 역량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억울함이 밀려와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 시간 정도 울었던 기억이 있다. 울어도 울어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서 유튜브에 동기부여 영상을 찾아보거나, 유명인의 명언들을 모아두었던 어록집을 보면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다.(퇴근하고 돌아온 아빠가 내가 울면서 동기 부여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보고 벙찐 표정을 짓고 있던 상황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무튼 지구촌 친구들의 다양한 위로를 받고 자신감을 조금 회복했던 나는 세 번째 주행시험에서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되었고, 운전 면허증을 손에 넣게 되었다. 고작 운전면허 합격한 걸 왜 이리 거창하게 쓰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운전면허를 합격했다는 사실보다, 뭔가를 시작해서 끝맺음을 했다는 사실이, 노력을 해서 얻은 것이 있다는 현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웃기게도 그 순간부터 조금씩 미래에 대한 불안감, 내가 뭔가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조금씩 환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운전이 내 인생의 유일한 실패점은 아니다. 나는 무수히 많은 실패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지금도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그런 실패점을 지우거나 외면하기 급급했다. 실패할 것 같으면 뭔가를 포기하고, 잘 안된다 싶으면 놓아버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실패를 하지 않으면 성공을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실패를 한다는 그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면 성공에 다다를 수 없다. 실패를 하지 않고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언젠가 실패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 인생이라는 결승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액셀을 밟는 것도 중요하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대부분 브레이크를 잡아야 할 때는 갑작스럽게 일어나곤 한다.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그저 잠시 멈춰 있을 뿐이니까. 마음이 추스러지고,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브레이크에서 살짝 발을 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다시 액셀을 밟아보면, 멀기만 했던 결승점에 조금씩 도달하고 있을 것이다.
「스피커 폰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연수 - 장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