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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ul 20. 2023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피프티 피플」- 정세랑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피프티 피플 -정세랑




 삼 년 전 즈음에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게 유행인지도 모르고, 같이 일하던 동료가 해보자는 말에 얼떨결에 해보게 되었다. 평생 성격분류는 혈액형 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문항은 왜 이리도 많고, 선택지는 왜 다섯 개나 되는지. 확실하게 고를 수 있는 거면 편하기라도 할 텐데 애매한 대답을 해야 하는 문항도 있었기에 시간은 점점 늘어졌고, 더 이상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워질 때쯤, 검사는 끝이 났다. 그렇게 나온 결과는 ENFP. 소위 엔프피 혹은 엥뿌삐라고 불리는 MBTI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엔프피라고 외우지 않고 그 밑에 적혀 있던 '스파크형'이라는 말만 외우고 다녔기에 누군가


 "너 MBTI가 뭐야?"


 라고 물으면


 "응, 나 스파크형."


 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시작했다. 스파크형이 도대체 뭔지 열심히 찾던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라, 이, 엔, 에프, 피. 엔프피라고 읽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동안은 '스파크형'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뭐랄까. 엔프피라는 단어보다 '스파크'라는 단어가 나를 더 잘 설명하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조금 오버하자면 미래까지도 아마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을 즐길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이라는 범주가 모순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지독스레 좋아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어정쩡한 관계는 없다. 


 "그 사람 어때?"


 라고 누가 나에게 물어보는데, 만약 내가


 "그냥 평범해."


 라고 대답한다면, 이 말은 곧 그 사람은 나와 친하지 않거나, 그냥 대면대면한 사이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이라도 친하거나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좋은 사람이라고 대답했을 거니까. 뭔가 스파크가 생기면서 좋고, 싫음으로 나눠버린 것 같지 않은가? 조금 부족하다고?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떤가.


 나는 새로운 만남도 좋아한다. 모임을 나가는 것도 좋아하고, 무언가를 배우는 것도, 회식을 가는 것도, 엠티나 여행을 가는 것도,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을 즐긴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뭔가를 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현재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갑자기 만난 만큼 빠르게 관계가 연소되었던 적도 많다. 그럼 다시 원래 친했던 친구들에게도 돌아와서 즐겁게 얘기하고, 여행을 다니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을 즐기는. 그러니까 마치 '스파크'가 튄 것처럼. 찰나의 순간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서 엔프피보다는 '스파크형'이라는 말이 훨씬 좋게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스파크형이 아니라 엔프피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해질 때즈음에, 내 주위에서는 MBTI 맹신론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 MBTI를 물어보고는 엔프피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호들갑을 떨면서, '대박', '맞는 거 같아', '야 그냥 완전 너다', '진짜 너랑 찰떡인 듯?' 등등. 한두 번 들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계속 이런 반응을 듣고 있으니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릴 지경에 이르렀다. 


 맹신론자들의 특징은 MBTI의 내용을 거의 100% 가까이 신뢰한다는 점이었는데,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가 있으면 P인지 물어보고, 집순이나 집돌이인 친구들에게 I인지를 물어보고, 공감을 잘해주는 친구에게는 F인지, 현실적으로 대답해 주는 친구에게는 T인지. 등등(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문제는 이런 얘기를 계속해서 듣다 보니 나 역시 점점 MBTI를 맹신하게 돼버린 것이다. 외향형인지, 내향형인지. 망상을 하는지 안 하는지, 계획적인지 계획적이지 않은지.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보다 MBTI가 뭔지를 먼저 물어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시점에서 MBTI는 성격유형 검사라는 작은 범주에 속해있지 않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이자, 스몰토크 주제를 넘어서서 이제 하나의 공감대 형성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로 군림해 있는 상태이다. 


 말이 나온 김에 엔프피의 특징에 관해서 나열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밝다. 그것도 엄청 많이.

 2. 말이 많다. 그것도 엄청 많이.

 3. 질투도 많다. 그것도 엄청 많이.

 4. 주변에 친구가 많다. 그것도 엄청 많이.

 5.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이.

 

 등등. 근데 이렇게 하나하나 적고 있으니, 뭔가 이거랑 비슷한 캐릭터가 하나 떠오른다. 밝고, 말도 많고, 긍정적이고, 질투도 많은데? 친구도 많다? 아니, 이거 그냥 스폰지밥이잖아!(전국에 엔프피를 곁에 두고 있는 수많은 징징이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하루는 내가 어쩌다가 이런 수다쟁이가 되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답은 간단했는데,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여럿 모여있든, 1:1로 만나든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공백이 생길 때가 있다. 뭔가 전체적으로 할 말은 없는, 뭔가 붕 떠버린 듯한 그런 느낌. 그럴 때면 나는 왠지 책임감을 느낀다. 이 공백을 내가 책임지고 채워야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이야기로 이 공백들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얘기도 하게 되고, 진중한 대화로 넘어가버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솔직하고 밝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집에 와서는 또 그런 얘기를 왜 했을까 하며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그러나 금세 일어나서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감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모순덩어리. 그게 바로 내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말을 조리 있게 하는 사람이 부럽다. 하고 싶은 말만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감정적이지 않고 이성의 끈을 잡은 채로 남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동경해 왔던 것 같다. 나는 왜 저런 사람이 되지 못하고 이렇게 감정적이고 말만 많은 아이일까 싶다가도, 뭐 어때. 이게 내 모습인데. 하고 넘어가버리곤 하니, 조리 있게 말하는 사람이 되는 건 이번 생에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어쩌면 남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 남들이 재미없다고 여기는 이야기들.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을 누군가가 들어주길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이 언제까지나 나의 사소하면서 시시한 이야기들을 들어주기를. 그리고 독자분들의 사소하면서도 시시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나중에 하나도 모르겠지? 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의진은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한사람, 한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피프티 피플 - 정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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