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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ul 27. 2023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

「이끼숲」- 천선란 

 「행복과 책임감은 같은 수레를 타고 있다던 의주의 말이 떠올랐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수레는 레일에서 이탈하거나 뒤집혀. 책임감 없는 행복은 위험하고, 행복 없는 책임감은 고통스러운 거야.'」

 이끼숲 - 천선란





  가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자그마한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소설가가 될 거라며 집에만 박혀 있는 남자의 이야기를. 매일 애인을 바꿔서 집에 데리고 오는 여자의 이야기를. 퇴근할 때마다 치킨과 캔맥주를 사 오는 남자의 이야기를. 남얘기 하는 걸 좋아하는 치킨과 맥주를 사 오는 남자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를. 이른 나이에 결혼한 신혼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이런 사람들이 모두 한 빌라에 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매일 치킨과 캔맥주를 마시는 아저씨의 주사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고, 소설가가 될 거라는 남자는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애인을 매주 바꿔서 데리고 오는 여자를 본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아줌마는 옆집 새댁을 붙잡고 두 시간 동안 얘기를 한다. 새댁은 얼른 빠져나오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서 그 얘기를 다 들어주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이 돌아오면 아줌마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가끔씩은 자신의 아내의 이런 모습에 진절머리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그는 집에 늦게 들어가야겠다는 명목 하에서 근처의 치킨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혼술을 하기 위해 들어간 치킨집에서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 매일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라며 포장을 취소하고 둘은 매장에서 술잔을 기울인다. 서로 아내에 대한 뒷담화를 하고, 예를 들자면, 약간 이런 상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새댁의 남편 : 우리 아내는 너무 투정이 많아요. 아니, 나도 일하다가 집에 오면 피곤한데, 자꾸 옆에서……

 

 맥주 + 치킨 아저씨 : 아이고 말도 마라. 나도 그거 피하려고 매일 늦게 들어가니까. 지금 완전히 초빼이 됐다이가.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는기라. 이거 다 묵고 노래방이라도…… 


 남자는 이후로 가끔씩 맥주치킨아저씨와 술을 마셨고, 치킨집에 사람이 많을 땐 그의 집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 뒤로 남자는 아내에게 그 아저씨가 마냥 나쁘고 시끄러운 사람은 아니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아내는 험담 아줌마한테 자신의 남편이 조금씩 맛탱이가 가고 있다고 얘기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이다. 


 새댁 : 요즘 저희 남편도 술 먹는 거에 빠져서 그냥 달고 산다니까요. 아니 술이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나도 하루종일 빨래하고 밥하고. 놀러 다닐 시간도 없는데 지는 맨날 놀러 다니고 노래방도 가고. 누구는 노래 싫어해서 안 가나요?


 험담 아줌마 : 나는 그래서 우리 남편 완전히 놨잖아 그냥. 안 오면은 그냥 어디 굴러다니고 있겠지. 밥도 알아서 먹겠지. 그냥 신경 쓰지 마라뿌라. 아니 뭐 지가 굶고 다니든 어떻든 우리가 뭔 상관이고. 새댁은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도 하면서 사소. 아, 아이면은 내일 여자들끼리 카페 함 갈까? 여기에 억수로 고소한 커피집 있거든.


 소설가가 되고 싶은 남자는 가끔씩 들리는 험담 소리와 싸움 소리를 듣고 소설을 쓰기도 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애인을 바꾸던 여자는 최근에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서로를 미워했다가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사람.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멀어질 수 있는 것도 사람. 위험에 처하는 것도 사람.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내가 왜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마도 내가 상상 이상으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을 거라고,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막연히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바보 같은 생각


 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 범죄는 물론이고 나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차고 넘치니까. 차별이 일어나고, 갈등이 번지고 전쟁이 진행 중인 국가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악한 감정들보다 좋은 감정을 사람들이 더욱 많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아니 믿고 있다. 사랑과 이해라는 감정이 불안과 갈등을 조금씩 상쇄시키고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불행에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고 방황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개개인의 역량으로 누군가를 불행에서 완전히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불행을 내 손으로 떨쳐주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이 점차 많아지고, 결국에는 언젠가 내가 불행의 늪에 빠졌을 때, 나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소마, 나는 우리가 이끼였으면 좋겠어.
 나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바위틈에도 살고, 보도블록 사이에도 살고 멸망한 도시에서도 살 수 있으면 좋잖아. 고귀할 필요 없이, 특별하고 우아할 필요 없이 겨우 제 몸만 한 영역만을 쓰면서 지상 어디에서든 살기만 했으면 좋겠어. 햇빛을 많이 보기 위해 그림자를 만들지 않고, 물을 마시지 못해 메마를 일도 없게. 그렇게 가만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거야. 시시하겠지만 조금 시시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끼숲 -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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