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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ul 26. 2023

모든 감정들은 과거에 있다.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  김남숙

 「모든 감정들은 과거에 있고, 나는 재활용 쓰레기봉투에서 여름철 내내 썩어가는 수박이 된 기분이다. 나는 강박적으로 그런 순간들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을 적는다. 대부분 참을 수 없는 기분에 관련된 일들, 혹은 참을 수 있었던 기분에 대한 칭찬의 기록들이다.」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 김남숙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적의 나는 밝고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집에서 사랑도 많이 받은 편이었고, 친구도 잘 사귀었고, 들쭉날쭉한 성적이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성적도 잘 나오는 편에 속했다. 그렇기에 항상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을 이뤘고, 그로 인해서 약속도 많았다. 친구집에 놀러 간다던지, 다 같이 소풍을 간다던지, 생일 파티에 초대를 받는다던지. 그렇기에 나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누군가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누군가를 싫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세상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보다 맞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차츰 알아가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안 맞는 친구와는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잘 맞는 친구와는 가깝게 지내던 도중 초등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왔다. 담임 선생님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아무튼 나이를 먹을수록 너희가 보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어차피 중학교도 같은 동네로 가는데 뭐가 그리 달라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중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대부분이 동네 친구들이었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아이도 있었고, 유치원을 같이 다녔던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봐온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내 인간관계는 매번 안정권에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중학교는 달랐다. 근처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모두 섞여서 오는 것은 물론, 사춘기가 오거나, 타 지역에서 전학을 오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로 인해서 노는 무리. 소위 말하는 일진그룹이 형성되기도 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친했던 친구들이 다른 중학교로 배정을 받는 바람에 새로운 친구를 하나둘씩 사귀어가고 있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일진 무리에 껴있던 녀석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야, 니 왜 그리 설치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괜스레 움츠러들었는데, 뭐라 설명할 새도 없이 그는 "야 그냥 좀 조용히 다녀라."라는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 뒤로도 그는 가끔씩 나에게 시비를 걸곤 했고, 나도 몇 번씩 반박을 하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반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가 가까웠으니까. 그리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알게 되었다. '아 저 아이는 나를 싫어하는구나.' 아마 그때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가끔씩 나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것은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사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것도 변치 않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워지기도 한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여행을 떠나고, 이 사람이 충분히 나와 잘 맞고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표정이 안 좋아지면 머릿속에서는 불안감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이게 심했던 시절에는 친구에게 이러한 걱정거리들을 말하고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못 믿는 지경에 가기도 했었다. 


 한 번 비틀린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 베베꼬인 마음을 풀기 위해서는 꼬였던 부분을 반대로 돌려야 하지만, 내 마음을 쥐고 있는 손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더욱 강하게 마음을 움켜잡는다. 누군가에게 말할 곳도 없이 떠돌던 감정들을 나는 어느샌가 글로 옮겨적고 있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적고, 그날 느꼈던 감정을 적는다. 그것이 소설일 때도 있었고, 산문일 때도 있었다. 그 글들은 내 USB파일에 저장된 채로 세상 밖으로는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소용돌이치는 내 감정들을 글 속에 두고 나온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는 슬픔을 두고 나왔고, 하루는 분노를 두고 나왔다. 하루는 외로움을 두고 나왔고, 하루는 우울함을 두고 나왔다. 그렇게 어느 날,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을 한 번에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 나는 이런 지옥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계속 마음에 들고 있었다면 나를 갉아먹고 옥죄게 했었을 감정들이었구나. 


 책을 읽다 보면 가끔씩 이 글을 쓸 때 작가가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었는지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것이 기쁨일 때도 있고, 슬픔, 외로움, 괴로움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작가님도 이 책에 감정을 놓고 오셨구나. 그리고 그 감정을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싶었구나. 그리고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내가 글 속에 두고 나왔던 감정들로, 누군가가 위로를 받거나, 웃을 수 있거나, 같이 눈물을 흘려준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언제부터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더라.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쓰려고 엄청 마음먹지는 않았고, 그저 이것저것 쓰려고 하다 보니 그게 소설과 제일 비슷한 무언가였던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는 전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었는데, 자신이 솔직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거짓말을 진짜처럼 아주 조금씩 바꾸어서 말하기를 잘했으니까.」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 김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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