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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Aug 18. 2023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경청」- 김혜진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입을 다물어야 한다.」

경청 - 김혜진


 나는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날 봤던 것들, 그날 느꼈던 감정, 저 사람이랑은 친해지고 싶고, 저 사람이랑은 친해지기 싫고. 선생님은 어떻고, 내가 하는 취미는 이렇고. 너는 무슨 취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고, 네가 관심 있는 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이런 거다. 등등. 코드만 잘 맞는다면 정말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친했던 친구와 수련회를 가는 도중에, 그는 자신이 차멀미가 심한 편이라며 걱정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계속 말을 걸어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는데, 청학동을 가는 세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나눴고, 대화 때문에 멀미를 잊은 탓인지 그 녀석은 차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 좋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민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늘게 된다. 일상적인 고민부터, 부모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 대한 고민까지(정작 나는 여자친구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무튼 그런 얘기를 들으며 나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펼치며 해결책을 제시해 주곤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고민들의 진정한 해결책은 "경청"하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학교 시절 친했던 J군과의 고민상담에서였다.


 J군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때까지 친했던 친구였지만, 첫인상은 그냥 싹수없던 애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에 유희왕 카드를 좋아한다는 취미가 겹치는 걸 알게 된 후로 급격히 친해지게 된 케이스였다. J군에게는 두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두 명 다 공부를 매우 잘했고, 그는 나름의 위기의식 또한 느끼고 있던 차였다. 나와 함께 놀면서도 누나들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거나 집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을 하곤 했었다. 누나들이 자신한테 괴상한 신부름을 시킨다던지, 집에서 짜증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다며, 막둥이가 가질법한 평범한 고민 같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J군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가라앉은 목소리와 어두운 분위기까지. 부모니이나 누나들과 대판 싸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였는데, 그는 곧바로 나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니는 니가 하고 싶은 일이랑, 남들이 시켜서 하는 일이 있다면 뭘 하고 싶어?"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남들이 니 인생을 책임져줄 것도 아니잖아."


 그때의 나는 왜 이리 당연한 걸 묻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을 듣고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좋겠다. 니는."


 이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이후에 J군과는 왠지 모르게 사이가 서먹해져버렸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할 뿐 이전처럼 약속을 잡고 놀지 않았고, 그가 혼자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지만, 나 역시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갔고, 그렇게 좋아했던 유희왕 카드들을 헐값에 친구들에게 판매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후에 다른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지만, 그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고, 이후에 성적이 전교 상위권에 들만큼 올랐다는 사실도 말이다. J군과는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서먹한 사이로 지내다가 졸업식 당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때 J군에게는 뭐라고 대답해줬어야 했을지. 어떤 일이 있는지 물어봤어야 했는지. 가만히 공부만 하고 있던 그에게 왜 먼저 말을 건네지 못했는지. 어쩌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했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경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의 고민을 한발 빠르게 눈치채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 상대방의 아픔에 공감해 주는 것? 나의 잘못을 상대방에게 솔직히 말하는 것?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최선의 대답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하는 것이 상대방의 아픔을 더욱 깊게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말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기대어 있는 것이라면 자신은 무엇에 기대고 있는 걸까. 반대로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떠오르는 어떤 이름들이, 어떤 순간들이 있다.」

 경청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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