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시대」- 문보영
「내 방을 떠나는 날, 나는 일기장으로 가득한 옷장 문을 잘 닫고 내 방을 탈출했다. 그리고 새로 이사한 집에서 새 일기장에 새 일기를 썼다. 이상하다. 일기를 펴놓은 채 나갔다 돌아오면 그사이 집이 내 일기를 읽은 것 같다.
그리고 내 방은 내가 두고 간 일기장을 읽고 있겠지.」
일기시대 - 문보영
마지막으로 일기를 썼던 게 언제였을까. 아마도 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로 남아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문득 내가 마지막으로 썼던 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읽던 책을 놓아둔 채로 방구석을 뒤지며 초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장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은 짙은 파란색의 배경에 충효 일기라고 적혀있는 낡은 일기장 두 개가 전부였다. 초등학교 이 학년과 사 학년이 적혀 있는 것을 보니 나머지 네 권의 일기장 역시 집안 어디선가 숨을 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기장을 조금씩 읽어 내려가다 보니 놀라운 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가끔씩 내가 일기장에다가 시를 썼던 것이다. 아마도 그날 하루가 별 거 없는 날에는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시를 썼던 거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시가 아니라 에세이와 소설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시 밑에는 선생님께서 적어주신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시를 참 잘 쓰는구나.", "시 쓰는 걸 배워본 적이 있어요?"와 같은 칭찬의 글들. 아마도 이 코멘트 때문에 일기를 쓰는 것이 재밌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고, 그것에 관련한 말들을 써준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남긴 첫 번째 피드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가끔씩 본인이 주제를 던지고, 그것으로 일기를 쓰는 숙제를 내주기도 했었는데, 하루는 일기검사를 끝낸 선생님이 나를 불러내더니 일기를 너무 잘 썼다고 칭찬했던 적이 있었다. 반 아이들에게 박수를 받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으니 일기를 더욱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곧바로 다음 주제를 내주셨고, 나는 그때 일부러 칭찬받기 위해서 과도하게(그러니까 내 기준으로) 억지로 선한 모습을 생각하며 글을 써버렸는데, 내용은 대략 이랬다.
글의 주제는 부모님의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나는 그날 일기에 막노동을 하며 힘과 노력을 들여서 번 돈을 부모님께 드릴 거라는 내용을 썼다. 그 이유도 거창하게 쉽게 번 돈이 아니라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돈이었기에 부모님이 행복해하실 거라는 확신도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도 일기를 잘 쓴 아이로 뽑히겠지 라는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지만, 일기를 잘 쓴 사람은 내가 아닌 다른 친구였다. 그리고 내 일기장에는 장문의 코멘트가 적혀 있었다.
부모님의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그것이 꼭 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 쉽게 벌 수 있는 돈은 없다는 것. 그렇기에 네가 진정으로 부모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나체로 의자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 선하게 보이려는, 그저 칭찬을 받기 위해서 글을 썼던 그런 속마음이 들켜버린 것 같아서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적어도 일기장에는 거짓말을 쓰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힘든 일이 있을 때도, 남들 앞에서는 티를 못 내도 일기장에서만큼은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적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달아주는 코멘트를 읽으며 위로를 받는 날도 있었고, 웃었던 기억들도 많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쓰는 글들은 일기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에세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글 속에 내 감정을 두고 나왔다. 슬펐던 일, 화났던 일, 우울했던 일들을 글로 옮겨 적다 보면, 조금은 그 일이 괜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글을 써본다. 내 글에 코멘트를 달아줄 선생님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잘했다. 네가 쓰고 네가 알아야 할 때가 있고, 네가 쓰고도 네가 몰라야 성공할 때도 있다."」
일기시대 - 문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