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맹욱 Jul 17. 2023

우리 모두는 조연일 뿐이다.

「호수의 일」- 이현

「어떤 기억은 너무나 강렬해서 결코 그 이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그때는 그런 줄 전혀 모를 수도 있지만, 아니, 마음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순간들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걸 보면.」

호수의 일 - 이현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적에 같은 반에는 소위 말하는 '별난 아이'가 한 명 있었다.(이 글에서는 그를 K라고 칭하겠다) 반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고, 선생님 말을 듣지도 않고 대드는 아이. 가끔씩 싸움을 하고 가끔씩 학교에 오지 않았던 아이. 친구들과 선생님은 물론이고, 학부모들조차 그 아이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는 학부모 모임에 엄마와 참석하게 되었는데, 한창 얘기를 하던 와중에 K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학부모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는데,


 "걔는 어쩌다가 애가……."


 "이런 애들 때문에 학교 분위기가……."


 "앞으로는 걔랑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막아야……."


 엄마는 그 얘기를 들으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학부모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더니 똑같은 말을 자녀들에게도 하기 시작했다. K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고립되어 갔고, 친구들도, 선생님도 점점 더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었고, 그때 즘 한 가지 소문이 들려왔다. 


 "쟤 엄마랑 아빠가 이혼했댔잖아. 아빠랑 같이 산다던데, 그 아빠가 쟤를……."


 웃기게도 그 얘기를 듣자마자 지금까지 그 아이에 대해서 험담을 하던 부모들이 뭔가를 이해했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는 것이다. 공감이라 부를 수 없는 "어쩐지……" 같은 느낌의 분위기. 지금 생각해 보면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의 가정사를 들먹이면서 그의 부모를 비난하고, 아이를 재판대에 올리는 게 같은 어른으로써 부끄러운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소문은 학교 내부로 점점 퍼지게 되었다. 암묵적으로 K에게 어떠한 프레임이 씌워졌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었으리라.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엄마는 소문만으로는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그 가정도 그 가정만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잘 지내면 좋지 않겠냐는 말을 해주었다. 초등학교 오 학년이 되고 다시 K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그는 반에서 완전히 고립된 상태였다. 왕따보다는 은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왁자지껄한 교실 분위기 속에서 그는 철저히 배제당해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굉장히 신경이 쓰였고, 이내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도 책을 좋아했어서 점심시간마다 도서실에 가곤 했었는데, 아마 그때도 같이 도서실에 가자고 했던 것 같다. 


 그 후로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친한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주기도 하며 학교 생활에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시작했다. 막상 친해지고 보니 K는 소문과는 달랐다. 가끔 화를 내긴 했지만,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면 잘못을 인정하거나 서운했던 부분을 얘기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축구를 잘해서 운동에 젬병이었던 나를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K를 꺼려했던 아이들도 조금씩 폭력성이 사라지고 밝아지는 그를 보며 조금씩 다가오기 시작했고, K는 점차 반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K가 나를 불러 세웠던 적이 있었다. 1층 중앙 계단 앞에서 그는 


 "나도 변할 수 있을까?"


 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K는 감정적인 아이였다. 작은 것에도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웃고, 울 수 있는 아이였다. 자신에 대한 소문들이 세간에 떠다니고, 학부모와 선생, 그리고 같은 반 아이들이 대놓고 자신을 무시했던 학교 생활을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가끔씩 K에 대한 소문은 간간이 들려왔다. 소위 말하는 일진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는 것. 사람을 때리거나 돈을 뺏고 있다는 것. 소년원에 들어가고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린다는 것.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대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에 관한 소문은 일절 들리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 수험에 관한 이야기, 여자친구를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이야기. 좋은 대학, 좋은 차, 좋은 집, 좋은 직업. 등등. 아이들은 그에 관한 얘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대학교에서, 그리고 직장에서 나는 K와 같은 사람들을 만났다. 소문의 중심이 되는 사람, 사람들이 꺼리고 피하는 사람. 무리에 속하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 사람 등등. 그리고 그 사람들을 외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나도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가끔, K가 했던 말이 떠오르곤 한다. "나도 바뀔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K가 바뀌었어야만 하는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를 소문의 중심으로 만든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아무런 사실도, 근거도 없이 소문만을 믿은 채 그 어린아이를 절벽 끝으로 몰아붙인 것은 다름 아닌 "우리"였다. 바뀌어야만 했던 것은 K뿐만이 아니라 "우리"역시 마찬가지였던 것이 아닐까.




 「주인공은 대개 희생을 하고, 통렬한 복수를 한다. 배신한 상대는 죗값을 치르거나 깊이 회개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조연일 뿐이다. 독이 묻은 칼을 맞으면 죽고, 죽으면 되살아나지 못한다. 복수는 덧없는 맹세이며 누구도 회개 같은 건 하지 않는다.」

호수의 일 - 이현



이전 03화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