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 엄마의 훈육 방법은 ‘대화’였다. 어떤 상황이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명목하에서 어떤 인간이든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으시는 분이었다. 그렇기에 엄마의 훈육 방법은 대략 이렇게 진행이 되었는데,
1.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다.
2. 엄마가 달려와서 그 상황을 인지한다.
3. 차분히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나 나올 법한 이 훈육 방법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한 가지 전제조건이 빠졌다는 점이었다. 전제조건을 포함한 훈육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다.
2. 엄마가 달려와서 그 상황을 인지한다.
3. 차분히 앉아서(내가 납득하고 이해할 때까지) 대화를 나누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 납득하고 이해를 한다는 것이, 정말로 무서운 것이었는데, 아무리 화가 나고 슬퍼서 울어도 엄마의 대화는 멈추지 않았고, 내가 잘못을 인지할 때까지 대화는 이어졌다. 우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화를 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으나, 엄마의 신념에는 한계가 없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시간은 초등학교 입학 전으로 되돌아간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나는 엄마와 구구단을 외우고 있었는데, 7단이 지독하게 외워지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공부도 하기 싫고, 놀러 나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투정을 부렸고, 엄마는 잘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하며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그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데도 구구단은 외워지지 않았고, 참을성이 바닥이 났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그런 나를 조용히 쳐다보고 있었고, 더 화가 났던 나는 엄마에게 필통을 집어던지려고 했었다.
필통을 들고 엄마를 째려보고 있던 나를 향해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거 던지면 엄마 죽을지도 몰라. 내려놔.”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내 화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고, 큰일 났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었다. 엄마는 구구단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책상을 치운 후에, 내 두 손을 잡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날 나는 대략 세 시간 동안 사람에게 왜 물건을 던지면 안 되는지, 그걸 누군가가 맞게 됐을 때 다칠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할 건지, 필통이 아니라 날카로운 무언가였다면, 그것에 맞아서 상처를 입거나 더 나아가서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이걸 던지면 커서도 화가 나면 뭔가를 던지는 사람이 될 거라는 말과 함께 끝마디에는 항상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물음을 던지곤 했었다. 나는 엄마의 눈을 억지로 본 채로 잘못했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엄마의 훈육방법이 너무도 싫었다. 한 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았던 대화 속에서 나는 혼나고, 반성하고, 울고, 우울해하는 감정들을 반복하면서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계속 생각을 해야 했던 순간들이 너무 싫었다. 내 친구들은 그냥 잘못하면 몇 대 맞고 끝난다던데, 나도 그냥 맞고 끝나는 게 더 속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어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고, 싸우면서 엄마의 훈육방식이 얼마나 옳은지, 그리고 그렇게 훈육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잘못했을 때 때리고 넘어가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맞는 사람 입장이든 때리는 사람 입장이든,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맞는다.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되려 너무 어려운 일이다. 몇 시간이 걸릴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이해를 시켰다 할지라도 다음번에 똑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그걸 해낸 사람이었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면 안 된다는 그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문제든 대화로는 풀지 못하는 게 없다는 마음으로,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매번 길고 긴 대화를 해줬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지나친 사랑을 받은 기분이다. 언젠가는 나도 아이를 낳고 훈육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 순간마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지나치게 많은 사랑을 언젠가는 내 아이에게 물려주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 – 김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