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 문지혁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 우리는 왜 이토록 서로의 안녕에 집착하는 걸까. 어쩌면 그건 '안녕'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초급 한국어 - 문지혁
나는 어릴 적에 다른 아이들보다 말을 잘했다고 한다. 체구도 작고, 매번 새벽에 일찍 잠을 깨서 달래주기 바빴던 어린 시절의 나. 매일 저녁 엄마가 읽어줬던 대량의 그림책 때문일까, 남들보다 일찍 말을 했고, 그림책에 문장들이 모두 표준어였던 탓에 부산 아이에 걸맞지 않은 부드러운 표준어 말투를 구사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밖에 데리고 나가서 아주머니들과 얘기하면 "애가 서울앤갑네. 말을 왜 이리 이쁘게 하노."같은 말을 듣기 일쑤였다. 엄마는 가끔씩 그때를 회상하며 진짜 말을 조곤조곤하고 이쁘게 했었다며, 아나운서를 시켜야 할지 뉴스 앵커를 시켜야 할지 고민했었다며 웃곤 했었다. 엄마는 내 목소리가, 그리고 내 모습이 언젠가는 TV에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도 말해주었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갑작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게 말을 잘했다는 내가 처음으로 뱉었던 말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내 어떤 말을 해야 말을 잘하는 아이처럼 보일지에 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두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관포지교나 막역지우 같은 사자성이 일리는 없고, 왕밤빵이나 최참판댁처럼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일 것 같지도 않았다. 내 질문을 들은 엄마는 곧바로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는데, 두 살이었던 내가 처음 뱉었던 말은 다름 아닌
'파'
였다.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라면이나 국에 대파든 쪽파든 먹지 않았던 내가 처음 말한 게 '파'라니. 엄마는 너무 정확하게 '파'라고 말한 게 대단하지 않냐며 방글방글 웃어 보였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어릴 적 내가 말을 잘했던 이유를, 그리고 내가 아나운서나 앵커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을 알게 되었다.
음식에 들어가는 '파'인지, 아니면 그냥 소리를 지르다가 나온 '파'나 '퍄'라는 단어가 엄마에게는 충분히 자랑스러울만한 일이었고, 그것이 곧 내가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번지게 된 데에는 그럴듯한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러한 생각과 감정들이 모두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 존재만으로도 강렬한 빛을 내뿜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메꿔주는 것. 자신의 감정, 그러니까 행복이나 사랑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언어를 배우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이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조차 백 퍼센트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언어에 영원히 초심자로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농담 :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피를 흘리며 운전석에 앉아 있는 한국인 교포에게 미국 경찰이 다가와 묻는다.
"하우 아 유?"
그러자 교포는 희미한 웃음을 띠며 자동반사로 답한다.
"파인, 땡큐. 앤유?"
미국 경찰은 당황했다가 곧 감동한다. 아니, 지금 이 사람은 피를 흘리면서도 내 안부를 묻고 있잖아.」
초급 한국어 - 문지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