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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Aug 03. 2023

사이버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실체를 잃는 것이다.

「인생 연구」- 정지돈

 「"타자를 치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은 일이고, 사이버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은 실체를 잃는 것이다. 사실상 모든 것이 허위와 소외이며, 실체의 형편없는 대안이다. 그러므로 사이버 공간은 의미 있는 우정의 근원이 될 수 없다."」

 인생 연구 - 정지돈


 내 생각에,


 글쓰기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자기만족을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 사람. 나는 대략 칠 년 넘게 글을 쓰고 있었고, 그중에서 육 년 남짓을 소설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일 년 반 정도를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에세이와 서평을 쓰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육 년을 썼던 소설로는 아직까지 등단을 하지 못했고, 소설 슬럼프가 와서 시작했던 블로그는 인플루언서가 되는 기묘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나는 이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채로 커다란 의문에 빠졌다. 왜 내가 썼던 소설들은 서평과 에세이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을까.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문학이 고인물들의 싸움에서라는 흔해빠진 이유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한다는 자학적인 태도를 취하자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이유를 소거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단 하나의 이유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첫 번째 문단에서 말했던 것과 연관이 있었다. 글쓰기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고 첫 문단에서 말했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소설을 썼던 태도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즉 내 소설을 세상 밖으로 내놓기 위해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착각'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것에든 유행이란 것이 있다. 옷에도, 음식에도, 더군다나 책에도, 소설에도 유행이 있고, 메타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소설들은 어땠는가.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내 소설을 읽지 못했지만, 나는 철저히 내 기호에 맞게 소설을 써왔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이나, 팬데믹 소설, 가상현실 소설 등등이 유행하는 주제로 떠오를 때도 나는 나만의 길을 걸으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층간 소음에 관한 소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 관한 소설, 지구의 숨구멍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나는 소설, 사람들의 몸이 도라지로 변하는 소설 등등. 그 시대의 유행을 생각했다기보다는 나만의 장르를 구축하고자 애썼다. 그러나 내 이름이 세간에 드러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작가도 아닌 고작 문창과 졸업생의 소설이 유명해지는 것은 천운과 다름없는 일이었고, 이런 운이 나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알게 되는 데에는 무려 칠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소설에 투자한 시간이, 글을 써왔던 순간들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목적이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면 적어도 그때의 트렌드를 읽고 유행에 어느 정도 발을 들여놨어야 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었다. 


 블로그를 하며 에세이를 적고, 서평을 적으면서 느꼈던 것은 대중들은 철저히 유행을 따른다는 것이었고, 그 속에서 마이너로 나누어서 소문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웹소설을 써볼 필요가 있었고, 대중적인 주제를 가지고 공모전에 자주 참가하거나 정 안되면 내가 썼던 글을 모아서 출판사에 투고하는 방법을, 혹은 나만의 색을 입힌 소설들로 독립출판을 해봤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원석인 줄로만 알았다. 누군가 나를 깎아주기만 하면 다이아몬드가 될 것이라고, 긁지 않은 복권일 거라고 생각만 했던 우물 속의 개구리였다. 


 소설을 쓰고, 책을 내고, 밀리언 셀러가 되고 싶은 욕망만 있을 뿐,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나를 발견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싶으면서도 대중들의 악평이나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했던 작은 연필을 들고 있던 어린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런 생각을 마치자마자 물밀듯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이제야 나는 오랫동안 나를 옭아매던 '문학병'의 원인을 알아낸 것만 같았다. 최근에 브런치를 시작하고 인스타그램에도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내 글을 조금씩 세상에 내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소설이든, 에세이든, 서평이든, 어쩌면 시 일지라도. 나를 알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볼 작정이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글을 업로드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원했던 '작가'라는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나는 최근에야 생각하지 않는 법을 터득했다. 말보다는 행동, 생각보다는 실천, 이른바 수행적인 삶으로의 전환.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편집증을 의심하지 않기 위해 고도로 설계된 편집증. 스스로의 글을 불신하면서도 글쓰기를 지속하기 위해 고안된 메타―글쓰기」

 인생 연구 -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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