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어디로 가니?

by 임쓸모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있었다.


"아빠지?"

엄마는 처음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희가 계속 화를 내자, 찔끔 질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안희가 엄마의 이야기들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아빠는 아침부터 콩나물국에 반주 삼아 소주 한병을 마셨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들어온 엄마가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 차린 아침 밥상이었다. 엄마는 다시 마트에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빠는 갑자기 마누라가 바람을 피러 나간다고 생떼를 부렸다. 엄마는 아빠의 왠만한 투정은 무덤덤하게 받아줄 수 있었지만 입에 담지 못할 음란한 욕설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단다.


“미쳤어! 그만 좀 해! 진짜 지친다, 지쳐!”

“이 년이, 아주 그냥 간이 배 밖으로 나왔지!”


아빠는 처음엔 손으로, 다음엔 발로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웅크리고 고스란히 매를 맞는데도 화가 덜 풀린 아빠는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엄마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서랍장 위에는 영자가 생일선물로 준 도자기 곰돌이 저금통이 있었다. 이윽고 저금통은 엄마의 머리 뒤통수로 날아와 깨졌다.

엄마는 그 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눈을 떴을 때 방바닥은 깨진 저금통의 파편과 피로 흥건했고 아빠는 사라진 후였다. 그 와중에 대부분의 동전을 아빠가 쓸어 간 것 같다고 엄마는 헛웃음을 웃었다.

엄마는 어지러움을 참고 수건으로 피가 나는 머리를 부여잡고 약국으로 갔다. 약사는 처음엔 많이 놀라 병원에 갈 것을 권유했지만 엄마가 고집을 부리자, 상처를 소독하고 살펴봤다. 다행히 상처가 아주 깊지는 않다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고 마이신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 전화를 하고 방 안을 치운 것도 다친 엄마 본인이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안돼?”

“뭐하러. 동네 챙피하게.”

“동네? 동네에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다 이사가고 없는데.”

“신고한다고 뭔 뾰족한 수가 있간디.”

“조금 있다가 밤에 또 술에 취해서 들어와 봐. 그땐 정말 엄마 죽어.”

“넌 암 걱정 말고 올라가 쉬어. 새벽부터 일어나서 고단할텐데.”

“엄마 안 올라가면 나도 안 올라가.”

결국, 안희의 고집을 꺽지 못한 엄마는 옥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는 2층 옥탑에는 잘 올라오지 않는다. 미장이 시절 추락 사고를 당한 후로 조금만 높은 곳에 있어도 어지럼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늦게 들어오는 걸 보니 분명 아빠는 술을 먹고 들어올 게 뻔했다.


역시나 밤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온 아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옥탑까지 다 들렸다.


“이년이, 없어진 걸보니 뒈지진 않았네! 에이 썅!”


그리고 이내 조용해진 걸 보니 잠이 든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의 고함에 놀라 안색이 창백하다가 곧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본인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안희는 혹시 몰라 옥탑방문을 부여잡고 있다가 조용해지자 엄마 곁으로 가서 누웠다.


“엄마, 엄마는 아빠랑 왜 결혼했어?”

“니가 생겨서.”

“왜 내가 생겼어?”

“니네 아빠가 처음부터 나쁜 놈은 아니었거든. 그렇다고 좋은 사람같지도 않았지만. 공장에서 처음 봤는데 사실 별 관심도 없었어. 어느 날인가 공장 밤일 끝나고 집에 가는데 갑자기 골목에서 나와서 좋아한다고 그러더라고. 그리고 며칠을 졸졸 쫓아다니더라구. 누가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게 처음이어서 바보같이 넘어간거지. ”

엄마는 간만에 길게 말을 하더니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서 자. 내일도 일찍 나가야잖아.”


안희는 그저 아빠가 밉고 싫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웠다.

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의 눈 앞에서 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때는 참고 있지마는 않겠다고 안희는 속으로 되새겼다.

다음날, 안희는 신문 배달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뒤에서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다. 안희는 후드티 주머니 속의 콤파스를 움켜 쥐었다. 그리고 인기척이 느껴질 때 휙 돌아보았다. 양이었다.

안희의 손에 쥐어진 날카로운 콤파스를 본 양이가 말했다.

"어이구, 이안희. 역시 살벌해. 그런데 바보같이 연수년한테는 왜 맞고 다니냐?"

안희는 콤파스를 다시 후드 앞주머니에 넣었다.

"남이사."

"이젠 걔가 너 안 괴롭힐거야."

"나 안괴롭히게 만들려고 니가 갤 괴롭히는거니?"

"야, 그건 좀 아니지. 난 그냥 호감있는 여자 아이를 지켜주려는거잖아."

안희는 곰곰히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말했다.

"나 지금 바쁜데."

"난 좀 한가한데 새벽부터 눈이 떠져서, 새벽공기 좋다, 야. 자주 나와봐야겠어.'

"그럼 맑은 새벽 공기 흠뻑 맡고 들어가라, 난 일하려 간다.'

"내가 도와주면 좀 빨리 끝나지 않을까?"

"?"

"뭐해? 늦었다며~"

양이는 배급소까지 쫓아와 안희가 가방을 매고 나오자 뺏듯이 들고 앞장섰다가 뒤돌아 말했다.


"근데 어디로 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