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대하여 02
아니, 옛날 유치원에 대하여
이 꼭지를 쓸까 말까 고민했다. 이유는 어줍지 않은 글로 많은 오해를 사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마시던 우물에 침 뱉는 격’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글만 쓸 것도 아니고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한 시기를 글로 솔직하게 정리하고 넘어가자는 마음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대학을 졸업한지도 어느새 22년이 지났는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동안 유아교육 시장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아교육의 변화를 시장의 변화로 표현한 것은 그동안의 유아교육이 사교육의 한 분류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유치원은 사립이다. 지금과 같은 교육기관으로서의 유치원이 생긴 것은 70년대 이후이다. 모든 어린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후에 유치원과 더불어 유아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의 활성화는 20년 후에 이루어진다. 90년도에 있었던 <망원동 남매 화재사건>으로 91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고 나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보육제도가 본격적으로 태동되었다.
하지만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여전히 대부분 사립이었고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미술학원도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3곳에서 모두 근무를 해보았는데 당시 근무하던 곳이 영어 유치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서 영어 유치원에서 근무한 경험도 생겼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모두 소속이 약간씩 다르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가 관할하며, 미술학원, 영어유치원은 학원의 개념으로서 지역 구청의 관리를 받고 유치원은 교육청에 소속된 기관이다. 학원은 교육환경과 교육비, 수강인원을 허가받은 대로 운영하는지 정도를 나라에서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한다면 유치원은 교육부에서 정한 교육법에 따라 교육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여야 하며 훨씬 더 엄격한 원장 자격도 필요하다.
내가 졸업할 당시만 해도 유치원들은 각자 도생하고 있었다. 나라에서 간섭은 조금, 지원은 거의 받지 않았다. 원아모집을 위하여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수입(?)되었고 피아제, 프뢰벨, 몬테소리 등등의 교육가들의 이름이 붙여진 유치원들은 지금의 프랜차이즈 빵가게처럼 각 교육 협회에 얼마간의 돈을 내고 교육을 받고 간판을 사다 붙였다. 물론, 각 교육마다의 특징이 있고 교육 효과가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장점이 있어 유치원 교육이 발전한 것도 웃프지만 현실이다.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교육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유치원들은 나름 고군분투해왔다. 하지만 한 나라의 한 교육 부분이 일관성 없이 유행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물론, 유치원도 정해진 교육과정이 있지만 특성상 교과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각 교육 프로그램과 적절한 혼용이 가능하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피부로 느낀 것이지만 (각 교육 개념을 연구하고 성실하게 따르는 일부 전통적인 유치원을 제외하고) 유행을 따라가기만 하는 유치원의 모습은 다음과 같은 흐름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전통교육이 유행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기치 아래 유치원들은 아이들에게 풍물놀이를 가르치고 다도를 가르쳤다. 그 후 참여정부 시절은 소통이 화두였다. 초등학교에서는 모둠식 토론 수업이 활성화되었고 유치원에서도 생각 나누기, 발표수업 등의 프로젝트 수업이 유행한다. 절정은 MB시절이었다. 미디어에서는 “어렌지”가 희화화되었지만 실제 하위 교육계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중언어, 몰입 영어교육이라는 이름들로 교육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지금은 빈부격차를 나타내는 지표로도 쓰이는 “영어유치원”이 탄생하는 배경이 되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은 출산과 육아로 직접 교육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이원화를 통합한다며 누리과정이 생겨났고 증세 없는 영유아 복지제도로 시끄러웠다.
내가 대학을 막 졸업해서 이 바닥에서 일할 때와 지금의 크게 다른 점은 바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고 관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의 근무 초기만 해도 유치원 정원을 초과해서 받고 나라에서 조사가 나오면(원장은 나오는 날짜를 미리 알고 있고) 한 반의 신발장을 숨기고 당일 그 반은 견학을 갔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정원 숫자를 속이기도 하고 오후에 하는 특강 수업비, 분기별로 내는 재료 교재비에 대한 관리는 아예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이 바닥에서 정보가 돈이고 위험을 피하는 길이었으므로 원장들끼리의 연합은 공고해져 갔다. (공무원, 정치가들과 연줄을 대고 말 안 듣는 교사의 명단을 공유하고 엄마들이 좋아할만한 행사, 교육프로그램들을 공유하는 집단이 한유총이다.)이 시절 유치원 원장들은 재벌 부럽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한 달 원비가 15만 원 정도였고, 유치원 교사의 월급은 당시 50~60만 원 수준이었으며 한 반에 아이들은 30명이 넘던 시절이었다. 유치원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수입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이때부터 원장의 자식들이 쉽게 원장이되는 세습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 행복카드로 결제하게 되면서 정원 수 속임수는 쓸 수도 없고 특강비, 재료비도 상한가를 정해 두어서 페이백이 있다고 해도 원장들의 수익은 예전만 못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억울하다는 원장님들도 계실지 모르겠다. 지금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예전보다 회계가 투명해지고 원아 수는 줄고 나라에서 주는 교육비는 오르는 물가에 못 미처 운영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 예전의 유치원, 어린이집의 회계가 멍멍이판이었다는 것을.
2012년 대선공약으로 사립 유치원을 공립 유치원 수준으로 지원해주겠다는 후보가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도 안 찼던 게 생각난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현재 교육비를 현실화하는 것은 이해가 되고 필요하지만 예산을 뚝 떼어서 사립 원장들에게 관리하라는 것은 불법을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 3 법이 시행되니 기대를 걸어보지만, 사립 유치원을 공립 유치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그냥 사립을 공립 화해서 나라에서 운영하면 된다. 예산 문제와 원장들의 입장 차이가 있으니 하루아침에 이루지지 않겠지만, 유치원을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집단이 교육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