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5도까지 올라간대! 더우면 참지 말고 에어컨 가동!"
이라는 말을 남기고 남편은 출근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동향인 우리 집은 새벽부터 햇볕이 쨍쨍하더니 결국에 등짝에 흐르는 땀 때문에 뒤척이다
일어났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담요>라는 만화책을 소개하기로 한 것은 이열치열이라는 사자성어를 고려한 것이다...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그렇게 순서를 정해둔 기계적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각설하고 이 책의 계절은 겨울이다.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성장만화인데 거의 대부분의 겨울 풍경이다. 내용 또한 겨울스럽다. 춥고 마음이 시린 내용들이다.
"그날 밤 골방에서 자야 했던 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
"형, 되게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봐."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과 폭력, 차별에서 오는 두려움, 죄책감들이 흑백의 거침없는 그림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아직은 어린아이일 뿐인데 그러한 폭력들에 무방비에 노출되고 자신보다 더 어린 동생이 같은 폭력들을 당할 때 형인 자신이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지는 장면에서 두 형제를 키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너무나 슬펐다. 할 수 만 있다면 이야기 속의 아이를 가만히 안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난 다른 세계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영원한 세계, 유한한 이 세상의 고통을 씻어 줄 그 세계를...
어쨌든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그림과 종교였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게 그림 안에서 단죄하고 현재를 잊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꿈꾸는 아이...
"난 레이나 야."
비단 같은 머리칼이 이마에 늘어 뜨려 져 있었다. 나는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그 애는 편해 보였지만 눈썹을 찡그린 데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었다. 휴게실 난방기가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따뜻한 진동 소리가 방을 포근히 감쌌다. 나는 계속 그 애의, 레이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만 둘 수가 없었다. 그 애는 안심하고 잠이 들었다.
주인공 크레이그는 성경학교에서 만난 레이나를 통해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순수한 눈의 세계, 감각의 세계 그것은 신앙이 주지 못했던 안정감과 행복이었다.
그리고 편지와 전화를 주고받던 주인공은 레이나의 가족의 초대를 받아 레이나의 집에서 2주간 머물게 된다.
"내가 레이나에게 실수로 남으면 어쩌지?"
"모든 건 결국 소멸해. 부서져 없어지지. 그렇담 뭐하러 관계를 시작해야 하지"
"가끔 넌 그립다는 표정으로 날보더라. 이렇게 내가 옆에 있는데도."
크레이그의 뮤즈인 레이나의 삶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이혼 위기인 부모님과 부모님이 입양한 장애를 가진 오빠, 동생을 실질적으로 돌봐야 한다. 거기에 이기적인 언니의 베이비시터 노릇까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틈도 없이. 그러면서도 둘은 위태롭고 불안정한 상태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누운 채로 밤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송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마 누구든지 별빛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무늬를 이루며 쏟아져 내리는 눈 속에서는 공간감도 깊이감도 모두 사라진다.
그는 레이나의 방 벽에 그림을 그려주고 레이나는 그를 위한 담요를 선물한다. 어린 시절 그에게 희망이었던 천국을 부정하는 레이나. 크레이그는 신에 대해서 자신이 가지는 죄책감에 대해서 생각한다. 순수한 사랑을 만끽한 둘은 어느새 서로의 생활로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너무도 기이하고 아름답고 신비로 워서 마치 꿈같았던'시간이었지만 크레이그의 삶의 진로를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만남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제자인 글라우콘에게 인간이 동굴 속에 사는 존재라고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이 어릴 때부터 갇힌 존재라는 것을. 담이 쳐진 뒤쪽 통로로 사람들이 동물과 인간의 형상을 한 우상을 들고 지나간다. 그리고 통로 저편에는 동굴 속을 밝히는 불빛이 있다. 죄수의 눈으로 볼 때 보이는 것은 벽에 비친 우상의 그림자들뿐이다. 일종의 그림자 인형극 같은 것이지만, 죄수들은 그것이 그림자 혹은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현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죄수를 놔주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면 그는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던 진실을 허상으로 인정하는 대신 오히려 현실을 이단 취급할 것이다.
차차 그는 인간이란, 인간 형상을 하고 있는 우상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 죄수를 동굴 밖 햇빛 아래로 끄집어내면 그는 그 보다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처음에는 눈이 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차차 신세계에 적응해가면서 그들은 익숙한 그림자들의 윤곽을 눈으로 좇기 시작할 테고 그 뒤로 차츰 하늘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다만, 밤에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적응의 마지막 단계는 대낮에 하늘을 보는 것이다.
-눈을 돌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크레이그는 종교의 모순점에 고뇌하고 신학을 전공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듣지 않고 고향을 떠난다. 떠나기 전 그동안 그렸던 그림과 물건들을 태웠지만 담요와 성경은 다락에 깊이 숨겨둔다. 그리고 먼 훗날, 고향을 방문했을 때 다시 레이나의 담요를 열어보고 위로받는다.
새하얀 표면에 흔적을 남긴다는 건 얼마나 뿌듯한 일인지. 지나온 발자취의 지도를 그린다는 것. 설령 그것이 한순간의 일이라 해도
크레이그가 눈길을 걸어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작가에게 <담요>는 자신이 성장하고 깨닫고 사랑의 경험을 한 인생의 귀중한 한 시기일 것이다. 그 시기의 아름다움을 대비해 어린 날에 가해졌던 폭력이 끔찍하게 고스란히 그려진다. 그리고 성장 후 담담하게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작가의 현재가 있다.
이 책을 닫으며 나는 나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의 담요는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