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 한 일요일 & 보통의 존재
자기연민과 후회
P.81
"이따금, 아침이면 그렇다네. 바로 그 시간에 슬픈 생각이 드네. 그러면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내 몸의 부분들을 만져보고, 손가락과 손을 움직여보고, 잃은 것들에 대해 슬퍼하지. 천천히 내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슬퍼한다네. 하지만 그런 다음 슬퍼하는 것을 멈추네."
미치교수가 슬퍼하는 것을 멈추는 방법은 한바탕 우는 것이라 했다. 죽음 초연해보이고 죽음에 대한 농담도 하는 그였지만 역시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죽어간다는 현실에서는 슬픈 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아무리 포장해도 죽음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모리 교수는 단지 슬퍼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P.81~P.82
"그 다음에는 내 인생에서 여전히 좋은 것들에만 온 정신을 집중하네. 나를 만나러 와 줄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내가 들을 이야기에 대해....(중략).....
내 몽이 천천히 시들어가다가 흙으로 변하는 것을 보는 것은 끔찍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을 갖게되 한편으로는 멋진 일이기도 해."
그분은 미소지으며 덧붙였다.
"누구나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
다른 챕터에서는 모리교수의 아버지가 불시에 돌아가신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종종 급사와 병사 중 선택할 수 있다면 무엇이 좋을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내 스스로의 고통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안에 죽는 게 좋을 듯 싶었다. 하지만 요즘은 남은 자들의 상실감이나 내가 그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생각하면 고통스럽더라도 시간을 들여 죽음을 준비하고 싶다. 어느 것이든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타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지 모른다.
P.91
"미치, 우리의 문화는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놔두지 않네.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휩싸여 살고 있어....(중략)...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 인가?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뭔가 빠진 것은 없나?'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셨다.
" 누군가 그런 방향으로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네. 혼자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기는 힘든 법이거든."
나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우리 모두 평생의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미치가 모리교수에게 후회되는 일이 없냐고 물어 봤을 때 돌아온 대답이었다. 여기서 후회라는 것은 자기반성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일것이다. 자기에게 지나친 연민을 가져서도 반대로 지나친 비하가 있어서도 안된다. 혼자서 객관성을 확보하기란 어려우므로 나를 비춰주고 끌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것은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혹은 좋은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챕터와 연관해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보통의 존재>(이석원)라는 산문집이다. 담담한듯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바닥까지 들여다본 듯한 작가의 쓸쓸한 말투에서 자기연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런 쓸쓸함은 보통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을 다독이며 읽었더랬다. 올해 발간 10주년을 맞아 특별판이 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