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성호가 아침에 미안했대... 그냥 가래.”
뭔가 이상했다. 아침의 그 눈빛으로 봐서는 한판 벌일 것이 분명했는데.
역시 두고 보자는 놈은 무서울 게 없는 건가? 안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철진이를 노려봤다.
철진이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진짜 다른 뜻은 없구 쑥스러워서 나한테 대신 전해달라고 한 거야. 여하튼, 난 말 전했다. 알았지? 나, 나 간다.”
철진이가 허둥지둥 사라지는 모습은 상당히 의심스러웠지만 상대가 미안하다는데 안희가 쫓아다니며 싸울 이유는 없었다. 살짝 맥이 풀렸다. 그리고 그 날은 아무 일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야, 양부인!”
며칠 후 아침, 등굣길에 만난 미나가 안희를 이렇게 불렀기 때문이다.
“뭐?”
“너 몰라? 너 양부인이잖아!”
“양 부인이 뭐야? 서양에서 온 부인이냐? 양과자 같은 거? 근데 내가 왜?”
“너 아직 모르는구나? 양지승이 너 찍었대!”
“양지승이 누군데? 날 왜 찍어?”
“걔, 지난달에 전학 와서 일주일 만에 우리 학교 일짱 먹은 얘! 우리 반인데 몰라?”
지난달 전학생이라면 키가 크고 희멀겋게 생겨서 맨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걔 말인가?
안희는 그 얘의 얼굴을 떠올리려 했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 아이가 싸움을 곧잘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걔가 왜? 무슨 일로 날 찍어? 찍는다는 건 날 괴롭히겠다는 건가? 정성호 다음은 전학생인가?
근데 부인은 또 뭔 소리야?
안희는 어떻게 돌아가는 사정인지 알 수 없어 당황스러웠다.
“그나저나 걔를 어떻게 꼬셨냐? 양지승 키도 크고 캡숑 잘 생겼잖아~.”
미나가 조잘대는 소리에 안희는 더 놀랐다.
“꼬셔? 내가 걔를? 나 양지승이 누군지도 몰라. 걔가 날 찍었다는 의미가 그런 뜻이야?”
“기지배, 순진한 척하긴. 여하튼 남자얘들한테 양지승이 너 건드리지 말라고 지령같은 거 내렸다던데?”
안 흰 어리둥절했다. 여태껏 반에서 윗동네에 사는 가난한지만 공부를 쪼끔 잘하는 아이 포지션을 맡고 있었던 안희로서는 누군가 그것도 남자아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찍었다(?)니... 두근거리면서 한편 두려워지기도 했다. 며칠 전 정성호가 순순히 물러난 이유도 이런 거였나? 전교 일짱이라는 그 아이의 지령(?)!
안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만있자, 일단 그 아이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봐야겠다. 누구길래 왜 자신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인지 정보가 더 필요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벌써 교실문 앞이다.
안희는 문득 교실에 어떤 표정으로 들어서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설레발치지 말자. 소문일 뿐이고 당사자에게 뭘 들은 것도 아니고.
안희는 심호흡을 하고 교실문을 열었다.
교실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모두들 안희를 의식하는 것도 같았지만 그건 안희 스스로가 그냥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를 일이다.
양지승 자리가 어디였더라. 일분단 맨 마지막 줄. 최대한 그쪽은 보지 말자. 하지만 눈은 어느새 가재미 눈을 하고 창가 자리를 흘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 빠지게도 양지승은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는지 빈자리였다.
“휴우”
안도인지 실망인지 의미를 모를 한숨이 세어 나왔다.
잠시 후, 양지승은 1교시 종이 울리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교실로 들어왔다. 다른 때보다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본 양지승은 생각보다 키가 컸고 하얀 피부에 눈동자 색은 갈색빛이 돌았다. 미간에는 입체감이 있는 점이 있었는데 아마도 ‘부처’라고 놀림받았을 것만 같았다. 양지승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교탁에 담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 언뜻 안희 쪽을 본 것도 같아서 안희는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수업시간 중에 뒤에 앉은 정성호가 안희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뒤를 돌아보니 정성호가 쪽지를 건네주었다.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쪽지를 펴자, <집에 가기 전에 소각장에서 보자!>라고 적혀 있었다.
안희는 뒤돌아 정성호에게 ‘누가?’라고 입모양을 뻥끗거리며 물어보았다.
정성호는 눈도 안 마주치고 귀찮다는 듯 손으로 창가 뒷자리를 가리켰다.
거기엔 양지승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