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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기시대 Apr 16. 2017

고들빼기 할머니

오랜만에 만난 고들빼기,그리고 그리운 할머니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 집

서울사는 누나들, 양양 쪽에 건설현장

 감리를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

건설현장에서 함바집 하셨던 어머니,

그리고 강릉에 나와 할머니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모여산 적은 별로 없었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오는 게 익숙했던지라,

그 당시에는 대부분 이렇게들

지내는 줄 알았다.

그리고 대부분 할머니 손에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도,

여전히 채소를 가리는 친구들도 있었고,

밥보다는 떡볶이 햄버거나 과자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 자라서 였을까,

난 그런 간식들보다는 밥이 더 좋았고,

밥반찬이 좋았다


중에서도,

난 유난히 나물이 좋았다.


그런 나에게 봄이란 계절은  

싱그러운 봄나물들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축복의 계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동네 어귀를 돌아 집으로
오시는 길에 발견했다시며,

뿌리째 이파리가 붙어있는 것을

 세 꼭지 정도 손에 쥐고

내 앞에 내미신다


고들빼기란다.

고들빼기의 맛은, 쓴맛이 강하기에,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 쉽게 , 선뜻 맛있게 먹기에는

조금 불편한 나물 중의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음식을

먹고 자란 덕분에, 옛날  전통의

음식에익숙한, 일명 어른 입맛을

어릴 적부갖고 있었기에

처음 맛보는 나물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 또한 첫 입에 맛있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씀바귀와 같은 나물에

익숙했던지라,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만큼

맛있는 나물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아챘나 보다.


나에게 고들빼기를

조심히 건네며

내 반응을 살피는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선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혹시나 손주가

쓰다고 하며, 퉤 뱉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그 주름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쌉싸름한 게 참 맛있네!"  라며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렸더랬다.

그제야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그 후로,

할머니는 마실 다녀오시다가

한두 개씩 고들빼기를 한 손에

꼭 쥐고 들어오셔서는

살짝 데쳐 초장과 함께 식탁

반찬 한편에 조심히 올려놓으신다.


할머니의 손에 묻은

약간의 흙이 고마워서

다른 반찬 제쳐두고 제일 먼저

고들빼기 초장푹 찍어

흰밥 한 숟갈 입에 넣고,

곧바로 같이 넣어

우걱우걱 씹으며,

한없이 퍼지는

쌉싸름한 향을,맛을 느낀다.


마실 다녀오실 때

어쩌다 한두 개 캐오시던 것을

어느새 마실을 핑계로

고들빼기 캐러 나가심을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창 먹성 좋은 17살의 손주가

먹어치우는 양을 80세 노인이

감당 할리 만무하거늘

그 불편한 허리를 껴안고,

동네 골목골목에 조금이라도

풀이 난 곳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봄이 오고

다시금 나물들이 파릇파릇 올라온다.


할머니 손에 묻은 흙먼지가 그립고

할머니 손을 닮은 고들빼기가 그리워


오랜만애 만난 고들빼기가

그리고 이 봄이


더욱 할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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