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고들빼기,그리고 그리운 할머니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우리 집은
서울에사는 누나들, 양양 쪽에 건설현장
에서 감리를 하시는 아버지, 그리고 그
건설현장에서 함바집을 하셨던 어머니,
그리고 강릉에 나와 할머니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모여산 적은 별로 없었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떨어져서
살아오는 게 익숙했던지라,
그 당시에는 대부분 이렇게들
지내는 줄 알았다.
그리고 대부분 할머니 손에 자랐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는데도,
여전히 채소를 가리는 친구들도 있었고,
밥보다는 떡볶이 햄버거나 과자를
더 좋아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할머니 손에 자라서 였을까,
난 그런 간식들보다는 밥이 더 좋았고,
밥반찬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난 유난히 나물이 좋았다.
그런 나에게 봄이란 계절은
싱그러운 봄나물들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축복의 계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동네 어귀를 돌아 집으로
오시는 길에 발견했다시며,
뿌리째 이파리가 붙어있는 것을
세 꼭지 정도 손에 쥐고
내 앞에 내미신다
고들빼기란다.
고들빼기의 맛은, 쓴맛이 강하기에,
나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리 쉽게 , 선뜻 맛있게 먹기에는
조금 불편한 나물 중의 하나이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음식을
먹고 자란 덕분에, 옛날 전통의
음식에익숙한, 일명 어른 입맛을
어릴 적부터 갖고 있었기에
처음 맛보는 나물에 거부감은 없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 또한 첫 입에 맛있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씀바귀와 같은 나물에
익숙했던지라,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만큼
맛있는 나물이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아챘나 보다.
나에게 고들빼기를
조심히 건네며
내 반응을 살피는 할머니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선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혹시나 손주가
쓰다고 하며, 퉤 뱉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그 주름에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쌉싸름한 게 참 맛있네!" 라며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렸더랬다.
그제야
아이처럼 환하게 웃으신다.
그 후로,
할머니는 마실 다녀오시다가
한두 개씩 고들빼기를 한 손에
꼭 쥐고 들어오셔서는
살짝 데쳐 초장과 함께 식탁
반찬 한편에 조심히 올려놓으신다.
할머니의 손에 묻은
약간의 흙이 고마워서
다른 반찬 제쳐두고 제일 먼저
고들빼기 초장에 푹 찍어
흰밥 한 숟갈 입에 넣고,
곧바로 같이 넣어
우걱우걱 씹으며,
한없이 퍼지는
쌉싸름한 향을,맛을 느낀다.
마실 다녀오실 때
어쩌다 한두 개 캐오시던 것을
어느새 마실을 핑계로
고들빼기 캐러 나가심을
굳이 변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창 먹성 좋은 17살의 손주가
먹어치우는 양을 80세 노인이
감당 할리 만무하거늘
그 불편한 허리를 껴안고,
동네 골목골목에 조금이라도
풀이 난 곳이 있으면
발길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련하게 남아있다.
봄이 오고
다시금 나물들이 파릇파릇 올라온다.
할머니 손에 묻은 흙먼지가 그립고
할머니 손을 닮은 고들빼기가 그리워
오랜만애 만난 고들빼기가
그리고 이 봄이
더욱 할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