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이었다.
20살이었던 나는 군대를 가기 전
가장 친한 친구 놈과
입대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하자며
막연히 강원도와는 거리적으로 먼
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떠나기로 하고
무작정 떠났었다.
그러다가 들른 통영,
소매물도를 가기 위해 잠시 들렀던
여객선터미널
그 정도가 나의 기억 속
통영의 전부였다.
게다가 그마저도 17년 전이라
희미해질 대로 빛바랬다.
이제 곧 두 번의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통영
과거의 모습이 희미했기에
그간의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여기저기 들어선 꿀방골목이며,
충무김밥 집들이며,
000 방송국에서 취재한 내용들을 뽑아
현수막 걸어놓은 식당들이나
얼핏 보아도 너무 깔끔한 보도블록 등을 보면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가늠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제는 통영의 랜드마크인 동피랑 벽화마을을
한 바퀴 휘 둘러보고는 머지않은 곳에 위치한
서피랑을 찾아보았다
아직 시작단계인 듯,
허전한 구석도, 이제 막 꾸미기 시작한 곳도
띄엄띄엄 보인다.
동피랑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서피랑에도 적용하고 있겠구나
어림짐작을 해본다.
동피랑 가까운 곳에 위치한
서피랑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통영이 고향인 대학 동기를
17년 만에 만나, 회포를 풀며
얼핏 서피랑의 이야기를 접했다
동피랑, 서피랑은
지금의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이 있기 전
동피랑은 똥피랑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판잣집에 위생상태도 좋지않아 냄새가 났고,
서피랑은 집창촌이 있었던 과거를 지녔던
그야말로 낙후된 동네였단다.
물론 과거의 모습이 떳떳지 못했을 수 있고,
지금의 모습이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지워버리듯, 덮어버리듯
그 흔적들을 희미하게 만들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모습이 더 의미 있고,
지금의 모습이 있기에
과거의 모습이
추억으로 남을 수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과거와 현재는
단절이 아니라
이어져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않은가..
서피랑 99계단을 오르는 첫 계단에 서서
잠시 위를 올려다본다.
지금은 미관상 없애려 하는
거미줄같이 복잡한 전선줄들이
맑은 하늘을 가릴 정도다
계단도 울퉁불퉁 반듯하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여기는
서피랑 99계단이 될 수 있다.
변화한다는 것이
단절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있는 그대로 둔다는 것이
도태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99개의 계단이
99개의 이야기들로
담아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