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에 감성을 담다
펜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것은
호주 여행을 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도시의 건물들과 풍경,
사람과 어우러진 골목길 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드로잉만이 전달하는 감성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삭막해 보이는 딱딱한 건축물도
펜 드로잉을 하고 나면,
마치 하나의 인격체처럼 여겨지며
그들의 이야기들이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펜 드로잉의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꼭 도전해 보고 싶은
대상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장'이었다.
'공장'이라는 이미지는,
대표적으로
감성이 전혀 배제된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대상물이기 때문이다.
과연 공장이라는 것에도
감성이 입혀질 수 있을까?
그래서
더욱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저기... 펜 드로잉 하신 것보고
연락드립니다
그러던 중, 가슴 설레는 작업 의뢰가 들어왔다
지난 1월 말,
한 건의 작업 의뢰를 받았다
바로 LG화학 70주년 기념품으로 작업 예정인
에코백에 삽입될 일러스트 작업이었다.
LG화학 70주년 엠블럼
작업의 내용은
LG화학의 공장들, 연구원 등
상징적인 건물들을
드로잉 하는 것이었다.
너무 원했던 작업이었던지라,
선뜻 승낙을 해버렸다.
(겁도 없이.. 또 무식하고 무모하게 말이다..^^;)
<작업 의뢰 사진들>
우선 작업 의뢰받은 건물들을 받아보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한두 개가 아닌
동시에 여러 개의 건물들을 바라보니,
순간적으로
건물들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달까?
마치
'그릴 수 있으면 그려봐!'라고
조롱하며 말하는 듯했다.
우선,
건물 하나하나 뜯어보고
천천히 그려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가장 공장스러운(?)
LG화학 여수공장 전경을 그려보았다
기존 건물 드로잉과 비교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수많은 파이프와 배관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다.
벽, 창문 등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건물들은
면으로 표현된다면,
공장은 마치 수많은 선들로
형태를 만들어가는
가는 실선과 굵은 선의
조합과도 같았다.
따라서 몇 배의 공을 들여
수많은 선들을 얽히고 설키게
수놓듯 그려 넣어야 했다
첫 드로잉부터 난관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었고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변태 습성이다^^)
첫 드로잉의 결과물로
의뢰인과 1차 논의를 했다.
다행히도, 맘에 들어 하시고,
그보다
편안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절대적인 지지를 해주신 덕분에
다음 드로잉들도 신나게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건물들을 하나하나
그려나가다 보니
마치 건물들을
잘 쓰다듬으며
그려나가는 느낌이다.
건물의 뼈대며
숨어있는 구석구석들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그리는
대상물과
한층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의뢰받은 작업을
완료했다.
그런데 미련이 남는다
뭐랄까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해서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데
바로 이별하려 하니
서운한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이렇게 그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오지랖을 부려버렸다.
원래 의뢰받은 작업의 영역은
위에 보인 드로잉 작업에서
마무리되는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찜찜했다.
에코백에 넣을 이미지를 작업하신다고 하면,
단순히 건물 드로잉의 나열로는
무언가 심심하고
의미도 잘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위의 공장과 연수원 그리고 본사 건물 등
이 모든 것이
LG화학을 이루는 뼈대들이고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어우러질 때에 비로소 건강한
기업이 만들어질 것이다.
결국
어느 건물 하나
별도로, 별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조화롭게 표현해보고자 했다.
<1차 작업과정>
위의 건물들을
조화롭게 배치하여
LG 로고 이미지의 형상이
원형으로 구성해보았다.
어찌 보면
내 맘대로 그린 것이지만
이것이
가장 내 스타일이기에
나 스스로에게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 작가의 곤조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담당자에게
슬며시 메일을 보내 보았다
다행히도
맘에 들어 하신다
하지만,
에코 백의 소재 및
로고나 건물의 배치 등에
나름 회사의 규정이 있을 터,
그대로의 사용은
힘들었던 듯하다.
제가 컴퓨터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지는 못해서...
조심스레 몇 가지 수정사항을
요청하시었지만,
나는 컴퓨터로 일러스트를
작업하지 않아서,
부분적인 수정 작업 자체가 불가했다.
그래도
의뢰인과 나는
어느덧 한마음으로
진짜, 그저 그런 회사 기념품이 아닌
진짜, 의미 있는 작품을 남겨보자며
의지를 함께 불태워버리고 있었기에,
흔쾌히 난
2차 드로잉 작업에 돌입했다.
앞서 말했듯,
일부 수정은 불가하다
다시 새로 그려보았다.
인쇄를 하는 에코 백의 재질을 고려하여
일러스트를 조금 더 단순화했고,
건물의 배치를 일부 수정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아래의 이미지로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로 작업을 해보았다는 것이다.
(진짜, 일러스트는 대학시절 이후
10년 만에 써보는 것이라.. 진짜
기초실력도 안되는 실력을 가지고
낑낑대며 그려보았다.
일러스트를 그림판처럼 사용했달까?^^;)
이후,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
드디어,
에코 백이 제작되었다.
펜 드로잉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한
LG화학과의 첫 번째 작품이기에
더욱 가슴 설레었다.
친절한 의뢰인께서
기념으로 에코백 몇 개를
보내주시었다.
직접 받아들고 보니,
왜.. 쓸데없이...
가슴 뭉클하고 그래..ㅠㅠ
신이 나서, 나름 연출해놓고
풀밭 위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LG화학 창립 70주년 사보의 한편에
에코 백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뿌듯한 마음에
사보를 천천히 읽고 나서,
서서히 덮는다.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막연히 해보고 싶다고 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는 것
그리고 계속해보는 것
그래야 현실이 된다는 것
P.S
생에 첫 펜 드로잉 기회를 주신
LG화학 의뢰인께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