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 이번주도 다윗과 아비가일에 대해 좀 더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다윗이 나발 가문의 사람들을 향해 진노하며 다가올 때에 아비가일은 그 앞을 황급히 막아섭니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삼상 25:18)
그리고 다윗 앞에 엎드려 나발의 죄를 자신에게 돌리고 자비를 구합니다.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삼상 25:24)
이 장면은 구약 성경 곳곳에 있는 '중보자'의 모습 중에서 중보기도의 과정과 방법에 대해 가장 잘 드러낸 장면 중 하나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 앞에 서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의로우심 때문에 심판을 행하시지만, 또 그러면서도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막아주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자비로우신 성품을 동시에 가지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살피시고 그 정의가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공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이사야 59:15~16)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겔 22:30~31)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예수님이 다 받아내셨고 그로 인해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이죠.
그래서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하는 모습들을 통해 성경에 말하는 "중보자"가 어떤 모습인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1) 다윗에게 먹을 양식을 먼저 드린다.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 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삼상 25:18)
아비가일은 우선 진노한 다윗을 진정시키기 위해 양식을 먼저 바칩니다. 이것이 신약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한 상징으로 가정한다면 다윗이 상징하는 예수님에게 드릴 양식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4장 3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2)
즉, 우리가 온전한 중보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그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나발의 죄를 자신의 죄로 동일시 하며 회개한다.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에게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삼상 25:24)
사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죄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건 행위입니다. 그 사람 대신 자신이 죽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실제로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들의 죄를 스스로에게 돌리시고 죽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성경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이 '죄의 전가'는 공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입니다.
결국, 다윗은 아비가일이 바친 음식과, 다른 사람의 죄를 스스로에게 돌리고 하는 회개로 말미암아 진노를 거두게 되고, 또 신부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 역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이루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자로써의 삶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서로 기도하며 온전히 거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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