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어느 따뜻한 봄, 5월.
내가 세상에 나타났다고 한다.
참 재밌는 건, 태어난 시간, 날 조차 누군가 얘기해주지 않으면 제 아무리 사진과 같은 기억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알 수 없는게 인간이다. 태어나는 순간 조차 알려줘서 기억하는 것이니, 사람이 저 혼자 독불장군 마냥 살래야 살수 없는 건 분명하다
태어난 때를 생각하다보니 요즘 유행하는 수저담론이 떠오른다. 언제부터인지 금수저, 흙수저니 하는 날 선 말들을 서로에게 퍼부으며 구분 짓는게 거의 이데올로기 수준이다. 수저론자들은 태어나서 처음 본 사람, 가족들의 조합이 마치 로또인냥 당첨과 낙첨 그 어디쯤에 속할테니, 결국 뻔히 보이는 인생이 시작된다고들 얘기한다.
아무런 선택권 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처음 만난 그 조합 -가족- 이 울타리가 될 수도, 다 허물어진 담벼락이 될 수도 있다. 이왕이면 든든한 울타리를 얻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렇게 인생을 시작한 이들을 부러워 하는 말도 되는 것이니 수저론이 마냥 옳다, 그르다고 잘라 말할 수 있을까? 혼자 살 수 없는 건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명하니, 조금 더 튼튼한 조합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내 가족이면 얼마나 좋을까? 반백년 가까이 살고 있는 나 조차 이런 생각을 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태어난 그 즈음 1970년대는 아스팔트조차 구경하기 쉽지 않았던, 흙먼지 날리는 동네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굳게 쥘 수 있었다. 로또 1등과 같은 가족에서 태어나고 함께 사는 사람보다는 흙담벼락 맞대고 사는 이들이 더 많았기에, 좀 부족한 가족을 두고 독기서린 원망을 부리기 보다는 차라리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결심이 쉬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금수저가 곳곳에 널려 있지도 않았으니. '어떻게 해 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를 품는게 어렵지 않았다. 그런 노력이 요즘 표현으로 ‘노오오오력’이라고 한다면 딱 맞다.
그 노력을 했다는 기억이 훈장인 양, 'X세대'라고 불렸던 70년대생 중년부터 조금 더 앞 선 세대까지 툭하면 오늘의 청년, 청소년들에게까지 “나 때는 어쩌고 저쩌고” 라는 말을 곧잘 한다. 때와 장소를 못 가리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데는, 촌스럽고 투박하고 흙먼지 날리던 그 시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이 멋져보이기만 하는 오늘을 그동안 '우리 어른 라떼'들이 힘써서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내가 한 발 앞서서 애쓴 덕에 그대들이 이렇게 편한 오늘을 사는 것'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도 한 자리 차지한다.
“지금 살기가 좀 좋아? 이게 내가 얼마나 고생한지 알아? 다 내(우리) 덕인거 알지?”와 다름 아닌 마음이다. 중년의 라떼에는 결국 자부심과 생색내고 싶은 마음이 함께 뭉쳐져 있다. 조금 유치하고 뻔하지만 그래도 그걸 인정 받고 싶어 하는 속내가 바로 라떼합창이 쉽게 끝나지 않는 이유라면 이유일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라떼를 이해하고 들어주는 상대방의 바로 '지금'을 미처 보지 못한 채, 경험이라며 이 말 저 말만 하는 건 더 이상 대화가 아니다.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 잡소리에 그친다. 이해하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가 된다.
수저론에 낙심하면서도 꾸역꾸역 오늘을 버티고 있는 청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솔직해져 보자.
지금, 당신이 태어난다면
예전의 그 노오오력만으로 세상에 눈 뜨자 마자 확인한 가족배정(!) 결과,
그 결과로부터 시작되는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렇게 근사해보이는 오늘을 사는 게 모든게 다 있는 지금을 살아내는 게, 아무 것도 없던 시절 무엇인가 만들어 가면서 살아야했던 일보다 훨씬 더 고되다. 눈을 제대로 뜨고 보자. 정말 너무 많은게 있지 않은가? 그러한 것들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이와, 그것을 누리기 어려운 이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속도를 그저 '노오오력'으로 줄일 수 있다고 보면서 밀어붙이는 일은 무지하다못해 잔인한 강요다.
한 숨 쉬는 것 조차 스트레스가 되어버린 모든 후배,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출생에서 시작되는 간격을 줄일 수 있는 다리를 곳곳에 놓는 일이 나이든 우리들의 '라떼'보다 더 앞서야 한다. 지금 한 숨 쉬는 모든 세대들이 수저론의 벽 앞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가 그들의 담벼락으로, 울타리로 서 주어야 할 때다. 그 방법을 묻고, 함께 고민하여 하나씩 만들어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