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출생률 0.7의 의미

by 글로 쓰는 바람

‘2022년, 국내 합계 출생률 0.78’이라는 발표가 난 후 지금까지 매체 종류를 막론하고 출생률에 대한 경고나 문제를 제기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뒤이은 2023년 가을,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우리나라 저출생 현상에 대해 우려한 내용을 시작으로, 최근 ‘한국소멸’을 염려한다는 전문가들의 입장까지 연이어 인용, 보도되고 있다. 이 틈을 파고 들어 출생률에 대한 불안을 지렛대 삼아 클릭 수 돈벌이를 노린 콘텐츠까지 확대재생산 되어 넘쳐난다. 어쩌면 ‘K-저출생’이라는 말까지 쓸 기미마저 엿보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정부는 출생률만 높일 수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쪽으로 급가속 중이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저출생의 원인은 아이 키울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든 현(혹은 전) 정부 탓이라며 정치판으로 이 문제를 몰아가고 있다. 대책을 내놓는 쪽이나 이 틈을 타 권력을 흔들어 보겠다는 쪽 모두, 나라 걱정에 한숨 쉬는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고, 심지어 산아제한을 주제로 한 표어나 포스터를 가려 뽑아 상을 주던 게 호랑이 담배 피던 때가 아닌데 달라도 너무 달라져 버렸다. 사실 1980년대 말만 해도 “둘도 많다”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산아제한정책을 내세우지 않았던가?


1980년대초 대한가족협회 산아제한구호 (출처 : 이데일리 2019-02-27일자 기사)




한국전쟁 이후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왜 이렇게 갑자기 변했는지 살펴보지 않고, 또 지금 당장 급하니 다시 낳자고 한다. 비약하고 싶지 않지만, 이쯤 되니 우리나라에서 출생이란 아침마다 닭이 낳은 알의 숫자를 헤아리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어쨌든 일단 많이 낳으세요, 낳아주세요”라는 다급한 외침 앞에서 의문이 든다. 이렇게 다시 많이 낳으라고 채근하는 게 출생률 0.7에 대한 대책일까?



출생은 아이템이 아니다


출생은 10개월 지나면 얻게 되는 아이템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고, 나와 함께 살아갈 다음 사람을 길러내는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사람’이 아닌, 10개월이 지나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처럼 출생을 보는 것 같다. 사람을 키우는 것, 자신의 다음 세대를 만들어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왜 무관심하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순식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 그런 고민 없이, “~~년대 생” 이니, “MZ대”, “욜로 문화”라는 식의 일방적인 편 가르기, 특정 대상에 대한 난폭한 일반화는 그 말을 듣고 보는 우리에게 피로감, 나아가 분노만 일으킬 뿐이다.


출생은 사람이 사회에 나타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이어가는 일이다. 지금 살고 있는 사회가 가능성이 있어야만 나의 다음을 떠올리게 된다. 오늘을 사는 현실이 고단하더라도, 내일이 좀 더 나을 거란 희망을 걸 수 있어야 사람을 키울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기대가 통한 것은 20세기까지였을까? 2024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그 기대와 희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여기서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대체 무엇이 과거-현재-미래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 희망에서 멀어지게 했을까?”



그 무엇도 권할 수 없는 세상, 지금의 현실


그 답은 결국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굳이 다음 사람 더러 살아보라고 권할 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남에게도 권할 마음이 없는데 혈육을, 그것도 내 자식에게 이걸 경험하도록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거나, 아예 그러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어떤 부모도 자식이 힘들고 암담한 채 하루를 버티면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 이치와도 같다. 생존환경이 불리하거나 불안하면 번식하지 않는 속성을 설명하는 생물학이나 진화론을 끌고 와서 설명을 덧대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내일에 사람이 살도록 하는 일, 출생을 0.7, 0.8처럼 기록 다툼하듯 봐선 안 된다.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 그것도 주자를 바꿔가면서 상당히 오래 달려야 하는 긴 호흡의 정책, 즉 대한민국 백년대계의 틀에서 고민해야 한다. 경제, 복지, 노동, 환경, 문화, 교육, 의료, 국방, 심지어 외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를 샅샅이 점검하여 사람답게 사는데 미치지 못하는 게 있다면, 구멍 나거나 끊어지기 직전까지 간 것들이 있다면 바로부터 고칠 일이다. 미래와 연결된 불안과 위험, 위기요인이 줄어들어야 한다. 무턱대고 얼마간의 현금(그러나 세대를 통해 넘어가는 빚)을 손에 쥐어 주는 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무슨 근거로 정치인들은 아직도 국민이 공짜 밥, 공짜 돈이면 앞다투어 지지할 것이라고 여기는 걸까? 이런 생각은 그들의 저열한 수준을 보일 뿐이다.



출생률을 둘러싼 접근은 정치권력 놀음에 물들지 말아야 하고, 과정이 결과에 앞서야 한다. 출생률 0.7은 오천 년 역사 이래 대한민국의 대전환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누군가의 임기, 혹은 특정 제도만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그때그때 급조된 임시방편은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빚만 더 얹을 뿐이다. 제대로 된 해답을 찾자면, ‘내’가 이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치인, 정부의 손에서 해결될 게 아니라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일이다. 저출생 대책이라는 핑계로 무책임한 선심성 지원을 발표하고 인기몰이형 인물들이 쏟아내는 그럴싸한 말 뒤로 문제를 숨기는 이들과, 권한과 예산조차 없는 위원회나 기구를 난립시켜서 대책인 양 포장하려는 시도를 국민의 의지로 의회와 정책에서 밀어내는게 우선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나의 일상’에 대한민국을 들여놓고 아래 위, 좌우로 들여다보며 공적 가치와 사적영역의 조화를 어떻게 찾을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우리’가 무책임한 정치꾼을 정치로부터 솎아낼 수 있고, 날림공사를 해 놓은 정책을 뜯어고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출생률 0.7의 의미는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이 ‘1’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출생률 0.7은 오늘의 우리가 대한민국의 내일에 대해 절망감을 느낀 결과이자, 더 이상 희망을 걸기 어렵다는 낭패감과 위기를 국민이 느끼고 있다는 신호이다.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경고를 무시한 채 저마다의 이익 앞으로 폭주하는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잡아 멈춰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안심이 되고 미래를 계획하는 일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여 희망이 보일 때에야, 이 땅에 ‘사람’이 계속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월 6일자 내일신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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